재림마을

진리를 찾는 당신에게

5장

Faith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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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과 안식일과 예언



1. 다니엘이 바벨론 왕 벨사살 원년에 본 이상 가운데서 작은 뿔이 하나님의 법과 관련하여 어떤 일을 행할 것이라고 하였습니까?(단 7:25)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단 7:25)

☞ 작은 뿔이나 때와 법에 관한 교사의 설명을 들으십시오.


2. 하나님의 십계명 가운데 일부의 사람들이 변경하여 지키고 있는 것은 몇째 계명입니까? 

☞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도들을 괴롭히고 하나님의 때와 법을 변경한 작은 뿔의 세력 이면에는 사단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는 사람들을 위해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이나 하나님의 계명을 바꾼 사람들은 모르고 그렇게 했습니다. 당신도 지금까지 모르고 주일을 지켜왔을 것입니다. 이제는 성경으로 돌아가십시요. ?안식일? 계명이 ?주일?로 변경된 역사에 대하여는 교사의 설명을 들으십시요.


3. 이사야는 오래 파괴된 곳들을 다시 세우고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다시 쌓는 일을 예언하면서 무엇을 언급하고 있습니까?(사 58:12-14)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수보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 (사 58:12-14)

☞ 이사야는 오랬동안 파괴되었던 안식일이 다시 회복되리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 일은 지금 당신에게서 성취되어야 합니다. 안식일의 회복은 당신에게 종교개혁의 또 하나의 진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4. 요한 계시록은 하나님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으니 무엇을 해야 한다고 교훈하고 있습니까?(계 14:7)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계 14:7)

☞ 이 귀절이 출애굽기 20:11의 네째 계명과 유사성을 가지고 있음을 주목해 보십시요. 이것은 곧 창조주를 경배하라는 말씀입니다. 경배 혹은 예배는 그분이 우리의 창조주라는 사실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는 것이 창조주를 경배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창조의 기념물을 세워 두셨습니다. 그것은 안식일입니다.


5.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왜 책망하셨습니까?(막 7:6-9)

가라사대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라 또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유전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막 7:6-9)


6. 예수님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들이 들어간다고 말씀하셨습니까?(마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 7:21)

☞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 빛을 보지 못하고”(사 8:20).

마치는 이야기
제정 러시아 당시 어느날 황제는 자기가 사는 궁전과 연결된 아름다운 공원을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문득 한 작은 수풀 근처에 보초가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황제가 아무리 보아도 그곳은 보초를 설만한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황제는 “자네, 왜 여기서 보초를 서고 있는가?”하고 물었습니다. 보초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명령에 따르고 있을 뿐입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황제 앞에 불려온 대장도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규칙이 항상 그렇게 되어 있었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아무도 왜 이 수풀 근처에서 보초를 서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황제는 옛 기록 문서 보관소를 뒤지게 했고 마침내 그 연유가 밝혀졌습니다. 약 백년 전, 캐더린 대제가 그곳에 장미를 심고 어린 나무를 함부로 밟지 않게 하기 위해 보초를 세워두었습니다. 장미가 죽은지 오래였지만 사람들은 오래된 규칙에 따라 그곳에서 보초를 서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오래된 규칙에 따라 주일에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 교회는 수백년 동안 이렇게 예배드려 왔습니다”라고 말하거나 혹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틀릴 수 있습니까?”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라마르크가 수세기 동안  6개로 알려져온 거미의 발을 다시 세어보았듯이 이 날을 다시 점검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안식일에 대해 잘못 생각해 왔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전혀 지킬 필요가 없는 주일을 지켜왔습니다.

무쇠를 아무리 갈고 닦아도 무쇠가 변하여 황금이 될 수 없듯이, 검은 색을 아무리 희다고 믿어도 검은 색이 흰색이 아니듯이, 일요일을 아무리 많은 이론들로 포장하고 성별해도 일요일은 여전히 “안식 후 첫날”(안식일이 지난 후 첫번째 오는 날)이요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엿새 중 하루이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이 아닙니다.

안식일은 단순한 요일 논쟁이거나, 율법 논쟁이 아닙니다. 그것은 누구의 권위에 순종하는가의 문제입니다. 또한 그것은 당신과 하나님과의 사랑과 신뢰의 문제입니다. 사단은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도록 유혹하였고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주신 계명-선악과를 먹지 말라-을 하와의 유익을 빼앗는 것이라고 속삭였습니다. 당신은 “이제 안식일은 안 지켜도 돼”라든지 혹은 “안식일을 지키라는 것은 네 자유와 유익을 빼앗는거야”라고 속삭이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까? 그것이 누구의 입에서 나왔든지 그것은 분명히 당신과 하나님 사이의 사랑과 신뢰관계를 깨뜨리려는 사단의 음성입니다. 당신은 구원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당신을 거저 구원하셔서 그분의 백성으로 삼아주셨으니 여호와 하나님의 안식일을 지켜야 합니다.

이 일에는 결심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는 주님이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압니다. 그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한 사람에게 주님은 다음과 같이 약속하셨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사오니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마 19:27-29)

☞ 이 공과를 마친 후 다음 쪽의 “질문과 답”도 반드시 공부하십시오.

 

<질문과 답>

1. 사람이 구원받는 것은 율법을 지켜서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되는 것이지 않습니까?(롬 3:28)

당신의 질문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답변합니다.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롬 3:31).

사람이 율법의 행위로가 아니라 오직 믿음과 은혜로 구원받는다고 해서 “그러므로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치는 곳은 성경에 단 한 군데도 없습니다. 오히려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전에 사단에게 매여 종노릇할 때는 지키고 싶었어도 지키지 못했던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수 있게 됩니다. 그들은 술도 끊고, 노름도 끊고, 싸움질도 안합니다. 뿐만 아니라 몰라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던 것들을 바로잡게 됩니다. 진정 구원을 경험한 사람은 안식일을 성경대로 지킵니다.


2. 안식일은 유대인을 위해 주신 것이지 않습니까?

그것은 오해입니다. 유대인이란 야곱의 네째 아들 유다의 후손들을 가리킵니다. 안식일은 그가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에게 주어졌습니다. 출애굽기 20:10에서는 “너나 네 아들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지키라고 하셨고 이사야 56:6, 7에서는 “또 나 여호와에게 연합하여 섬기며 나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나의 종이 되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 내가 그를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안식일은 유대인만을 위해 있지 않고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막 2:27)입니다.


3. 율법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폐지되지 않았습니까?(엡 2:15)

이 질문에 관하여는 이미 3과에서 답을 드렸습니다. 에베소서 2:15의 율법은 십계명이 아니라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 십자가 직후에도 “계명을 좇아 안식일에 쉬”(눅 23:56)었고 바울도 “자기 규례대로” 안식일을 지켰습니다(행 17:2).


4. 예수님께서 사랑의 새 계명을 주시면서 사랑만 하면 된다고 말씀하지 않았습니까?(요 13:34)

새 계명에 대해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요한은 “부녀여 내가 이제 네게 구하노니 서로 사랑하자”고 권면한 후 곧 “이는 새 계명같이 네게 쓰는 것이 아니요 오직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 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좇아 행하는 것이요 계명은 이것이니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그 가운데서 행하라 하심이라”(요이 1:5,6)고 말합니다.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신 것이나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것은 이미 신명기 6:5과 레위기 19:18에서 주신 계명입니다. 그것은 결코 새 계명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이 사랑없이 율법의 문자만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라는 계명을 재차 반복해 주신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사랑만 하면 된다”는 것은 전혀 예수님이 의도하신 바가 아니었습니다. 요한복음 14:15에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5. 신약에서는 예수님의 부활이 더 중요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죽은 예수가 아니라 산 예수를 믿어야 하지 않습니까?

예수께서 부활하신 일요일에 예배드리는 것이 산 예수를 믿는 것이라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신 금요일에 예배 드린다면 십자가의 예수를 믿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부활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것은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하고(롬 1:4) 우리의 부활을 보증합니다(고전 15:14- 18). 그러나 예수님께서 일요일에 부활하셨다는 사실이 일요일을 거룩하게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금요일에 돌아가셨다고 해서 금요일이 더러워지거나 거룩해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여 일요일에 예배드리도록 예수님으로부터 아무런 명령을 받지 않았습니다. 신약 성경은 그런 주장에 대하여 완전히 침묵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의 변경을 승인하시거나 주일 중 첫날이 거룩한 안식일을 대신할 것에 대하여 단 한마디도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그대신 예수님은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을 기념하는 두 가지 의식, 곧 성만찬 예식과 침례식를 제정해 주셨습니다.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 11:26)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침례라”(벧전 3:21)

로마서 6:4, 5에는 침례의 의미를 더욱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침례를 통하여 주의 부활을 기념합니다. 그러나 매 주일 그렇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한번만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정 주님의 부활을 기념한다면 일년에 한번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안식일을 매 주일마다 지키는 것은 지구 창조의 기념일이 일주일마다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6.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지 않고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으므로(막 2:27) 편리하게 변경하여 지켜도 되지 않습니까?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다고 해서 안식일을 사람 마음대로 변경하여 지킬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성경이 사람을 위해 있다고 해서 성경을 자신에게 편리한대로 고칠 수 없는 것과 동일한 것입니다.

안식일은 정말 사람을 위해 있습니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가게나 직장은 당신이 주인이 아니라 일이 당신의 주인입니다. 일년 내내 당신은 일에 매여 종노릇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식일을 지켜 보십시요. 그 날만큼은 당신이 주인이 되는 날입니다. 안식일을 성경대로 지키는 사람은 정말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다는 사실을 경험하게 됩니다.


7. 골로새서 2:16에 안식일을 가지고 폄론하지 말라고 하였고 호세아서 2:11에서는 안식일이 폐하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분명히 골로새서 2:16에는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가지고 폄론하지 말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다음 17절을 읽어보십시요.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이것들은 예수님을 표상하는 것들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제7일 안식일은 결코 예수님을 표상하는 그림자로 주신 것이 아닙니다. 안식일은 인간이 범죄하기 전, 아직 예수님의 희생이 필요하지 않을 때 창조의 기념으로 주신 것이지 인간의 죄를 대속하실 예수님에 대한 표상으로 주신 것이 아닙니다. 이곳과 호세아서 2:11의 안식일은 제7일 안식일이 아니고 ?절기 안식일?입니다. 이 문제는 제3과에서 이미 설명되었습니다.

참고로 7대 절기 안식일을 말씀드리면 ①유월절 안식일(1월 15일:14일 밤이 유월절) ②무교절 안식일(1월 15일-21일) ③오순절 안식일(3월 5일) ④나팔절 안식일(7월 1일) ⑤대속죄일 안식일(7월 10일) ⑥초막절 첫날 안식일(7월 15일) ⑦초막절 끝날 안식일(7월 22일) 등 입니다. 이 날은 제7일과 상관없는 절기 안식일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유대인들의 명절로서 공휴일이었던 것입니다.


8. 눅 16:16에 “율법”은 요한 때까지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누가복음 16:16에는 “율법과 선지자”라고 되어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명이 아니라 "구약성경"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성경절과 병행 구절인 마태복음 11:13에 보면 “모든 선지자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라고 되어 있어서 “예언”이라는 말이 더 들어가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초림에 관한 구약의 예언이 침례 요한 때까지”라는 말입니다. 질문하신 내용의 다음 절에는 “그러나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 보다 천지의 없어짐이 쉬우리라”고 되어 있어서 전혀 오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9. 로마서 14:5에 아무 날이나 각자 자기 마음에 확정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질문하신 귀절이 안식일이나 예배일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로마서 14장은 기독교인이 된 유대인들이 전에 지키던 전통들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당황해 하고 있을 때 주어진 것입니다. 질문하신 성경절은 안식일이나 예배일이 아니고 인간적인 한 날에 관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과거 유대교에 있을 때 지키던 각 절기들과 우상에게 바쳐졌던 제물에 관한 것과, 어떤 날에 금식하는 문제(눅 18:12) 등을 교회로 가져와서 논쟁하고 자기와 견해가 다른 사람들을 비판하였습니다. 바울은 “이 날도 좋고 저 날도 좋다. 각자 자기 마음에 확정하라. 다만 그것을 가지고 피차 비판하고 판단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왜 그렇게 말합니까? 그것들이 갖는 절대적인 의미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만일 위의 성경절을 예배일과 관련된 것으로 해석한다면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여 일요일에 예배드린다는 당신의 주장도 모순이 됩니다.


10. 요한복음 20:19에 보면 안식 후 첫날에 제자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었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 축복까지 하지 않았습니까?

여러 사람들이 이것이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여 주일 예배로 모인 첫 기록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조금만 자세히 읽어보면 그 주장이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가 아니고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여 있었습니다. 예배드리기 위해 모였다면 “모인 곳의 문들을 닫”기는 커녕 열어 두었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제자들은 새벽에 무덤에 갔던 여자들과 막달라 마리아로부터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들었지만 반신반의하고 있었습니다. 부활을 믿지도 않고 있는 제자들이 부활을 기념하여 예배드리기 위해 모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후 곧 바로 하늘 아버지께로 올라가셨습니다(요 20:17). 그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이 두려워 문을 닫아 걸고 다락방에 숨어 있을 때 예수께서 오셔서 자기의 살아나신 것을 직접 보여 주신 것입니다.


11. 사도행전 20:7에는 안식 후 첫날에 성만찬 예식을 가진 기록이 있는데 이것이 주일을 지킨 증거가 아닙니까?

초대 교회 당시 “집에서 떡을 떼는 것”은 하나의 관습이었고(행 2:46) 성만찬 예식이 아니라 단순한 식사였습니다. 그리고 성경상 하루는 저녁부터 시작되기 때문에(창 1:5, 8; 레 23:32) 안식 후 첫날이란 바로 토요일 저녁입니다. 그러므로 ?Good News Bible?에서는 아예 “토요일 저녁”이라고 번역했습니다. 당신은 현재 우리의 날짜 계산하는 방법으로 성경의 날짜를 계산함으로 착각한 것입니다. 우리는 밤 12시부터 계산하여 아침이 오고 정오가 오고 다음에 저녁이 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저녁 해질 때부터 하루가 시작되기 때문에 저녁이 먼저 오고 아침이 오고 정오가 옵니다. 예를 들면 목요일 저녁은 우리에게는 목요일 하루가 가고 해가 질 때지만 유대인들에게는 목요일이 오기 전 수요일 저녁이 목요일 저녁이 됩니다. 다음 쪽의 도표를 보시면 좀 더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주일 중 첫날 저녁은 지금 우리의 토요일 저녁입니다. 이것은 바울이 드로아에서 한 주간을 지낸 후 일요일에 떠나려고 했기 때문에 토요일 밤에 송별 예배를 드리면서 있었던 사건입니다.

* 현대는 하루 중 저녁이 맨 나중에 오지만, 성경에서는 하루 중 저녁이 먼저 옵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날이니라”(창 1:5, 8, 13, 19, 23, 31)


12. 고린도전서 16:2에 보면 매 주일 첫 날에 연보를 드렸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이것이 주일을 지킨 증거가 아닙니까?

여기에 “첫 날”이라는 단어와 “연보”라는 단어가 있다고 해서 그렇게 해석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성경절들을 다시 한번 자세히 읽어보십시요. 질문하신 성경절은 “매 주일 첫날 너희 각 사람이 이(利)를 얻은대로 저축하여 두어서”라고 되어 있고 이어서 “내가 갈 때 연보하지 않게 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당시 바울은 기근으로 고통하는 유대에 사는 교인들을 돕기 위하여 각 교회를 다니며 구호금을 걷고 있었습니다(행 11:27-30; 12:24, 25).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기록할 당시 에베소에 있었는데, 그는 갈라디아 교회에게 제안하여 효과를 본 방법을 고린도교회에도 제안하고 있습니다. 그는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이 하자고 합니다. “매 주일 첫날에 이익금 중 일부를 떼어서 예루살렘 구제금으로 저축해 두었다가 내가 갈 때 즉시 거두어 예루살렘으로 가져갈 수 있게 하자”

“저축하여 두어서”(set aside)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자기 곁에”(by himself)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집에서”와 동일한 표현입니다. 바울은 그 일을 집에서 하도록 부탁한 것이며 주일 예배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당신이 질문하신 성경절을 다시 한번 읽어보면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13. 요한 계시록 1:10에 보면 요한이 “주일”을 지킨 기록이 나오지 않습니까?

여기 말한 “주의 날”이 일요일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⑴ 성경에서 “주일 중 첫날”을 주일로 부른 증거나 혹은 ⑵ 요한이 계시를 받던 서기 100년 경에 이미 일요일을 주일로 부른 역사적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여기에 대하여 객관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성경은 그런 주장이 잘못된 것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제칠일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출 20:10)이라고 말합니다.

여기 말한 “주의 날”은 현대 개신교에서 말하는 “주일” 곧 일요일이 결코 아닙니다. “주의 날”이란 “주님이 주인이신 날”이라는 뜻입니다. 주님은 어느날에 주인이십니까? 마태복음 12:8에는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요한이 성령에 감동되었던 “주의 날”은 바로 “안식일”이었습니다.


14. 지금도 구약의 안식일을 그대로 지켜야 한다면 양을 잡아 제사도 지내야 하지 않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제3과 6번 문제에서 다루었습니다. 안식일은 창조의 기념일로 범죄 전에 제정되었기 때문에 이것이 예수님의 초림으로 변경되거나 폐지될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양을 잡아 제사드리는 제도는 범죄 후 예수님에 대한 표상으로 주어졌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그 표상을 성취하신 후에는 당연히 지킬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15. 지금도 안식일을 성경대로 지켜야 한다면 안식일에 불도 피지 말아야 하지 않습니까?(출 35:3)

십계명은 노동을 금하고 있을 뿐 불을 피지 말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면 왜 여기서는 불도 피우지 못하게 하였을까요? 당시 광야에서 불을 붙이는 일은 대단한 노동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음식은 안식일이 되기 전 미리 조리해 두도록 하였습니다(출 16:23). 시내산 주변의 기후는 비교적 따뜻하기 때문에 불을 피워 난방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불은 주로 음식을 조리하는 데에 사용되었는데 이런 기후에서는 음식을 데워 먹는 것이 꼭 필요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내산 주변에 머물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일에 불필요한 불을 피우기 위하여 공연한 노동을 하지 않도록 지시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기후가 추운 지방에서는 안식일에도 불이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서 아십니다. 건강과 생명 유지를 위해 필요 불가결한 일들은 노동이 아니며 하나님께서도 인정하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밭을 지나면서 이삭을 잘라먹은 일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한다고 비난했지만 예수께서는 두 가지 예를 들면서 제자들이 한 일을 옹호하셨습니다(마 12:1-8). 여기서 예수님은 안식일의 신성성을 비하시키거나 일을해도 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먹는 일 등 필요 불가결한 일들을 하는 것은 안식을 범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더구나 당신이 안식일 아침에 음식을 데우기 위해 가스 렌지에 불을 붙이는 일은 결코 힘든 노동이 아닙니다. 그것은 손가락 하나만 움직이면 충분할 것입니다.


16.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제7일이 창조 당시부터 지켜온 안식일이라는 확증이 있습니까?

그 증거는 많이 있습니다. 첫째는 유대인들은 수천년 동안 안식일을 생명같이 지켜왔습니다. 지금 그들은 우리와 동일한 달력을 사용하여 안식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둘째는 만일 중간에 안식일의 순환이 깨어져 잘못되었다면 예수님이 오셨을 때 바로잡아 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도 안식일마다 “자기 규례대로”(눅 4:16) 회당에 가셔서 안식일을 지키셨습니다. 세번째로는 영국 런던의 그리니지 왕립 천문대가 마크 핀리(Mark A. Finley) 목사의 질문에 대하여 보내온 답신에서 확인됩니다. 그 답신만 여기 기록하면 “마크 핀리 귀하. 그리니지 천문대에 보낸 귀하의 편지가 여기에 도착하였으며 천문대 대장께서 저에게 답장하도록 부탁하셨습니다. 칠일 제도의 계속성은 유대 종교의 아주 시초부터 유지되어 왔습니다. 천문학자들은 시간, 달력의 날짜, 연대와 관련된 것을 결정하는 일에 관심을 가집니다. 그러나 주일은 시민적, 사회적, 종교적 주기인 이상 달력의 조정으로 말미암아 방해받아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칠일 주기를 없애려는 어떠한 시도도 항상 유대 민족 당국의 가장 결정적인 반대를 야기 시켰으며 우리는 그와 같은 교란 시도가 결코 실행된 적이 없었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율리우스력에서 그레고리오력으로의 변경(1582- 1927)은 주(週) 중 날의 연속이 언제나 방해받지 않도록 만들어져 왔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요. R. H. 터커 올림. 공보관”(거의 잊혀진 날, 마크 핀리 저. 김광오 역, 서울:시조사, 1992. p.30)


17. 국가마다 시차가 다른데 어떻게 안식일을 꼭 제칠일에 지킬 수 있습니까?

자상하신 주님께서는 그 질문에 대하여도 답변을 주셨습니다.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요 일곱째 날은 쉴 안식일이니 성회라. 너희는 무슨 일이든지 하지 말라. 이는 너희 거하는 각처에서 지킬 여호와의 안식일이니라”(레 23:3). 주님은 “거하는 각처에서”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당신이 세상 어떤 곳에 가든지 그 처한 곳의 일곱째 날에 안식일을 지키면 됩니다.


18. 날짜 하루 차이가 그렇게 중요합니까? 너무 율법적이지 않습니까?

이것은 토요일이냐 일요일이냐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계명에 순종하느냐 사람이 만든 계명에 순종하느냐의 문제입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권위에 순종하느냐 사단의 권위에 순종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주님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고 하셨고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막 7: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날짜 하루 차이가 아니라 순종의 대상이 누구인가와 당신의 구원이 달린 문제입니다.

그리고 율법주의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율법과 계명들을 잘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잘 순종하는 사람이 잘못된 사람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의미가 됩니다. 율법주의란 믿음으로가 아니라 자신의 선행으로 구원을 얻고자 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선행으로 구원을 얻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선행도 사망의 값을 지불할만한 가치는 못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순종은 구원받은 결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구원은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실제적인 경험입니다. 구원이 단순히 죄를 덮는 것이라면 하나님은 구원을 통해 죄의 허가장을 주는 것이 됩니다. 참된 구원은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며 선하게 살도록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19. 다른 교회의 수많은 목사님들과 신학자들은 이런 사실들을 몰라서 일요일에 예배 드리고 있습니까?

놀랍게도 비슷한 질문이 신약성경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속들이 대답하되 그 사람의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 때까지 없었나이다 하니 바리새인들이 대답하되 너희도 미혹되었느냐?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이가 있느냐?”(요 7: 46-48)

하속들이 예수님의 설교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말하자 바리새인들은 “속지 말라. 종교 지도자들을 보라. 예수가 정말 메시야였다면 그들이 너희보다 먼저 예수를 믿었을 것이다”고 말하였습니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이 수천년 간 기다려온 메시야인 것을 모르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우리가 신약 성경을 읽어보면 당시 세 부류의 종교 지도자들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정말 몰랐던 사람들입니다. 둘째는 고의적으로 눈을 감은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에 대하여 예수님은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 함이라”(마 13:15)고 책망하셨습니다. 세째는 정직하게 진리를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니고데모와 아리마대 요셉같은 사람입니다.

현대도 동일합니다. 많은 분들이 모르고 그렇게 할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알고 있으나 고의적으로 눈을 감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분의 지도자들은 정직하게 진리를 따르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고 당신도 성경을 따르기 시작하면 이런 분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20.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하게 지킬 수 있습니가?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 13:10). 당신은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까? 한번은 미드 맥과이어 목사님이 대학 채플 시간에 “사랑”이란 주제로 강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애처가로 소문난 한 교수님을 강단에 서게 하신 후 몇가지 질문을 하였습니다.

“교수님, 계명에는 교수님이 아내를 죽이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지금 교수님은 아내를 죽이지 않기 위해 결심하고 맹세하고 투쟁하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목사님”

“교수님은 아내에 대하여 거짓증거를 하지 않기 위하여 매우 노력하지만 때때로 아내에게 불리한 거짓 소문을 퍼뜨립니까?”

“아닙니다. 그런 일을 하지 않습니다”

“또한 아내의 것을 도적질하지 말라는 계명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아내의 것을 도적질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계십니까?”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때 맥과이어 목사님은 다시 이렇게 물었습니다.

“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하여 매우 노력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납니다. 그런데 그분들은 계명대로 살기 위하여 무척 노력하고 결심하고 맹세하지만 결국 죄를 짓고 만다고 합니다. 그런데 교수님은 제가 말씀드린 십계명을 아내에게 지키는 일이 별로 어렵지 않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교수님은 곧 바로 대답하였습니다.

“제가 아내를 사랑합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는 말씀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이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지 않는한 결코 하나님을 거스려 범죄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다른 어떤 사람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지 않는한 당신은 결코 다른 사람에게 범죄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계명을 지키는 일은 결코 무거운 일이 아닙니다(요일 5:3). 야곱은 라헬을 위해 다시 7년간 머슴살이를 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년 동안 라반을 봉사하였으나 그를 연애하는 까닭에 칠년을 수일 같이 여겼더라”(창 29:20)

그렇습니다. 사랑의 힘이 가능케 합니다. 우리는 언제라도 “내가 완전하다”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절대적으로 완전하신 분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분의 계명을 지킵니다. 이 말을 부인하는 것은 성경을 부인하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말씀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요일 2:3-6)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 14:15)

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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