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사채널

본문 바로가기
더보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예언자 엘렌 지 화잇

Ⅱ. 엘렌 G. 화잇은 누구인가?" D. 낮말은 새가 듣고 : 예언자들과 관련된 문제

글씨크기

본문

D. 낮말은 새가 듣고 : 예언자들과 관련된 문제

1870년대 초반 화잇 부부는 위스콘신주와 미네소타주에서 열린 여름장막집회들을 방문하고 있었다. 집회들이 시작된 후에 이들은 한 야영장에 도착했다.  사람들은 큰 서커스용 텐트에 모여 있었고 설교자는 그의 기별을 힘있게 전하고 있었다.

화잇부부는 회중의 가장지리에 잠시 멈추어 섰다. 그리고 엘렌은 제임스의 팔을 잡고서 함께 가운데 통로로 앞좌석까지 걸어 내려왔다.  제임스는 자리에 앉았지만 엘렌은 그대로 선 채로 있었다.  엘렌은 설교하는 목사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마치 옛날에 예언자들이 한 방식대로 자신의 손가락으로 그를 가리키면서 설교를 중단시켰다.  격양된 음성으로 그는 크게 말했다.  “당신은 그 단에 설 자격이 없소. 당신은 이 회중들에게 기별을 전하기에 적합한 인물이 아니오.”

설교자는 순간에 멈추었다.  놀라움이 온 회중의 얼굴에 교차되었다.  만일 회중들이(후에 그들이 알게 되었던 것처럼) 엘렌 화잇이 이 설교자를 전에 전혀 만나거나 본적이 없고, 심지어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계시를 통해 보여주신 것 외에는 그에 대해 아무 것도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그들의 놀라움은 더욱 컸을 것이다.

일찍이 화잇 여사는 계시 가운데서 단지 이 사람의 목소리만을 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기별을 전해야 한다고 지시하셨다.  즉 “그가 사람들에게 설교하기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라고 그에게 말하라.  다른 주에 그를 남편이라고 부르는 한 여인과 그를 아버지라 부르는 한 아이가 있으며, 그리고 여기 이 야영장에도 그를 남편이라고 부르는 또 다른 여인과 그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아이가 있다.”

엘렌 화잇이 그 기별을 전했을 때, 설교자는 당황하여 단상에서 도망하듯 사라져 버렸다.  그의 설교는 슈베르트의 교향곡 8번과 같이 영원히 미완성인 채로 남았다.
그날 아침 회중 가운데 그 설교자의 형제가 앉아 있었다.  그 형제가 앞으로 나와 엘렌 화잇이 말한 것이 진실임을 시인하였다.  그 설교자는 사실상 이중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돌발적인 폭로는 그에게는 사필귀정이었다.  성령께서 그 장막 집회를 축복하셨으며 이 깨우침으로 경건과 거룩한 삶에 대한 커다란 부흥이 일어났다.Denton E. Rebok, "The Spirit of Prophecy in the Remnant Church," in Our Firm Foundation (Washington, DC: Review and Herald Pub. Assn., 1953), vol. 1, pp. 233, 234. (이 이야기는 초창기 지도자인 George B. Starr를 통해 Arthur L. White에게 전해졌다. White은 Rebok에게 그것을 말하곤 했다.)

누가 화잇 여사에게 다른 사람의 사생활에 관한 자세한 내용을 말해주었는가?  “밤말은 쥐가 듣는” 누설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확실히 로널드 레이건, 지미 카터, 리차드 닉슨 같은 대통령들만이 이런 비밀들의 누설 문제를 안고 있었던 유일한 정부 지도자들은 아니다.  다만 그들은 가장 최근의 실례에 불과하다.  이러한 누설은 기껏해야 골칫거리 또는 실망거리가 되기도 하고, 최악의 경우에는 전문적 경력과 명성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워터게이트 사건의 누설을 막으려 했던 시도는 결국 닉슨으로 하여금 대통령직을 내놓게 하였다.

가장 초기에 있었던 국가 기밀 누설의 한 경우는 2,800년전, 약 BC 850년에 일어났다.  다마스커스의 아람왕국(시리아)의 통치자였던 벤하닷 2세는 가장 복잡하고 성가신 문제를 의논하기 위해서 그의 신복들을 소집했다.  그 왕이 대적하여 전쟁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 군대를 매복 습격하기 위해서 자기의 병사들을 배치시킬 때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미리 그 전략을 알고 있는 듯했다.  결과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이성적인 판단에 의하여 시리아왕은 다마스커스에 배신자가 있음이 분명하다고 결론짓고 그를 찾아내기로 마음먹었다.

왕이 정부안에 누설자가 있다고 하자 신복들 중 한 명이 시리아 군대 내에는 결코 배반자가 없다고 왕에게 확신시켰다.  대신에 엘리사 예언자가 “왕이 침실에서 하신 말씀이라도 이스라엘 왕에게”(왕하 6:12) 알리고 있다고 하였다.
이 왕의 신복은 여러 시대에 있어서 사람들을 혼란케 하고 좌절시키고 분노케 한 이 진리를 말했던 것이다.  예언자들은 비밀정보들이 그들에게 도달되도록 하는 감추어진 통로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정보를 드러냄으로써 그들은 온갖 문제, 즉 폭로와 손실이 뒤따르는 불쾌한 결과를 야기시킬 수 있다.
우리가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엘렌 화잇도 이러한 경험을 하였다.
또 다른 흥미로운 경험이 1887년 6월 11일 이른 아침에 일어났다.  방금 덴마크의 코펜하겐으로부터 노르웨이의 모스에 도착한 엘렌 화잇은 약 8000마일 떨어진 켈리포니아에 있는 위생병원의 지배인에게 편지를 쓰려고 일어났다.

“밤중에 나는 당신이 그 병원의 간호부장과 함께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서로에 대한 그대들의 관심은 마땅히 부부간에나 있을 그런 것들이었습니다... 그 자매는 결코 다시 전과 같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대들은 하나님 앞에 득죄하였습니다.”Ellen G. White, Letter 30, 1887.

엘렌 화잇은 이미 기혼인 이 두 사람들의 행위가 간음이라는 뜻을 함축하여 써보냈지만 정죄하기 위한 목적은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하나님께서 범죄한 이 두 사람에게 자복하고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지배인은 자기의 잘못을 부인하였다.  오히려 그는 엘렌 화잇이 기관 내에서의 자기의 영향력을 감소시키려 한다고 되받아쳤다.  이제 어쩔 수 없이 엘렌 화잇은 몇 달 후에 다시 편지를 썼다.
내가 유럽에 머무는 동안 ______에서 벌어진 은밀한 죄악들이 내 앞에 적나라하게 보여졌다.  그 때 한 음성이 들리길 “나를 따라 오라. 내가 너에게 책임있는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진 죄악들을 보여 주리라” 하였다.  나는 여러 방들을 지나서 시온성 벽의 파수꾼인 그대가 다른 남자의 아내와 매우 친밀히 교제하여 거룩한 신임을 배반하고 우리 주님을 다시 한 번 십자가에 못박는 것을 보았다…

무릎 위에 그녀를 앉히고, 그대는 그녀에게 키스하고 그녀 또한 그대에게 키스하고 있었다.  밀애를 나누는 선정적인 모습과 행동의 광경들이 내 앞에 보여졌으며 이 모든 광경들은 내 영혼에 공포의 전율을 일으켰다.  그대의 팔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있었으며, 밀애의 표현은 점점 서로를 홀리고 있었다.  그리고 내 앞에 보여진 것은 그대들이 함께 침대에 있는 모습이었다.  나를 인도하는 천사는 “부정하다. 간음이여...”라고 말하였다.
그대는 결코 혼자 있지 않았다.  벨사살 궁전의 벽에 글씨를 새겼던 바로 그 동일한 손이 그리스도께서 당신들로 인해 수치를 당하신 그 모든 행위들과 말들을 하늘 책에 기록하고 있었다.Ellen G. White, Letter 16, 1888.
하지만 하나님의 예언자는 그 두 사람을 공개적으로 폭로하지는 않았다.  둘째 편지의 결과로 비공개 모임이 개최되었고 R목사와 H형제 자매가 겸손하게 자복을 하였다.Ellen G. White, Letter 27, 1888.

그러나 이 여 예언자가 계시가운데 보여진 일들을 증거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은, 비록 그런 경우가 자주 있기는 했지만, 다만 성적인 부정행위를 경고하도록 하는 그런 경우들만으로 국한된 것은 아니다.  엘렌 화잇과 관련하여 보다 더 극적인 경험을 했던 몇몇 사람들에 의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기억할만한 사건을 나는 사적으로 알게 되었다.

1950년에 나는 로스엔젤레스에서 엘브(샘) 헤밀톤(Elbe Sam Hamilton)씨를 만났다.  그때 그는 약 65세였고 나는 그 당시 젊은 목사였다.  한 세기가 바뀌는 시점에, 샘은 약 16세였고 켈리포니아 세인트 헬레나에서 살고 있었다.  그 때 엘렌 화잇이 호주에서 돌아와서 그 동네에 엘름쉐이븐 저택을 구입하였다. 샘은 건강이 좋지 않아 많은 의사들을 찾아다녔으나 그들 중 누구도 그의 정확한 병명을 진단해 내지 못했다.
샘은 호웰(Howell)산 밑에 사는 예언자로 불리는 이 작은 70대의 노인에 대해 듣게 되었다.  그는 또한 그녀가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면 즉시로 그들이 완쾌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는 그녀에게 도움을 청하러 가기로 결심했다.  어느 날 샘은 엘름쉐이븐에 가서 73세의 엘렌 화잇이 앉아서 정원의 잡초를 뽑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가 다가왔을 때, 화잇 여사는 그를 올려다보고 손의 흙을 털면서 일어났다.

샘의 말을 모두 들은 후에 엘렌 화잇은 그를 응시하면서 말했다.  “샘, 너는 몸이 아프구나. 실제로 너는 죽어가고 있단다.  하지만 너는 죽지 않을 수 있단다.  네가 만일 내가 지시하는 대로만 실행할 것 같으면 너는 노인이 될 때까지도 살 수 있을거야.”  그는 샘이 지금 선모충병에 걸려있음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 소년은 지금 즉시 돼지고기를 끊어야 했으며, 또한 모든 고기류 음식들도 금해야만 했다.  그리고 균형진 식사를 위해서 적절하고 영양있는 대체 음식들을 먹어야만 하였다.  그는 그의 식사습관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방법을 얘기해 주면서 소년이 무척 고민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았다.  소년은 지금까지 집안에 내려온 식사습관들에 대하여 대폭 개혁을 해야 하는데 과연 어떻게 그의 어머니를 설득시켜야 할지 막막했다.  만의 하나 그가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해도 어떻게 엘렌 화잇이 일러준 그 음식 요리법을 다 기억하겠는가?

상황을 금방 알아채고 엘렌 화잇은 즉각 그에게 다시 물었다.  “샘, 너 내 부엌에 와서 이 모든 것을 내가 어떻게 준비하는지 한번 보지 않겠니?”

“네, 좋아요.” 그는 쾌히 승낙했다.
“자, 그럼 내일 오후 2시에 여기에 오렴.”

그는 다음날 약속대로 왔으며,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계속해서 왔다.  강습이 다 끝났을 때 엘렌 화잇은 그 소년에게 그녀의 대가족을 위해 견습요리사로서 일할 의향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녀는 요리사가 필요했으며 그가 그 일에 적격이라 생각했다.  샘은 바로 그 자리에서 승낙했다.
어느 날 엘렌 G. 화잇이 부엌에 들어와 샘에게 말했다.  “샘, 짐을 꾸리려무나” 샘은 그녀가 자신을 이 일에서 해고시키려 하는가 의아해하며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너는 나와 함께 샌디애고 근처에 있는 파라다이스 밸리로 가는 거란다.  나는 남부 캘리포니아에 또 다른 요양원을 설립하기 위해서 파산한 병원의 20에이커 정도의 온천부지를 구입했단다.  새 단장을 위해 일할 인부들을 감독하기 위해서 거기에 가야 한단다.”

파라다이스 밸리는 한때는 그 이름에 걸맞게 숲이 무성한 아열대 지역이었다.  그러나 한 세기가 바뀔 때쯤 가뭄이 8-9년간이나 계속 되었다.  풀들이 죽고 나무들은 말라 비틀어졌고 우물은 고갈됐으며 토양은 사막으로 변했다.  “파라다이스”와는 너무 동떨어진 전혀 다른 곳이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자기들의 소유물을 헐값에 팔거나 포기해 버렸다.  이곳에 요양원을 세운다는 것은(이러한 기관에는 충분한 물의 공급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매우 비합리적인 것처럼 보였다.

폐허가 된 50개의 병실을 지닌 온천 건물을 건축하는데 만도 25,000달러의 비용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화잇 여사는 20에이커의 부지와 건물을 4,000달러에 구입할 수 있었다(그녀는 금액의 일부를 한 부유한 재림교인 미망인인 죠세핀 고찌안으로부터 빌렸고, 나머지 부분은 은행에서 융자하였다). 그래서 엘렌과 샘은 샌디에고를 향해 떠났다.

일꾼들을 고용하고, 2개의 큰 천막을 세워, 그중 한 천막은 일꾼들의 식사를 준비하기 위한 부엌으로, 다른 하나는 식당으로 세웠다.  물을 찾기 위해서 우물을 파는데 전문가인 네브라스카 출신의 재림교인인 살렘 헤밀톤을 불러와서 화잇 여사는 100피트의 우물을 파겠다는 조건 계약에 서명했다(그 부지에는 이미 한 곳의 우물이 있었으나, 그 물은 소금기가 있어서 전체적인 공급에는 적당치 않았다).

어느 날 아침 살렘 헤밀톤이 부엌 텐트로 걸어 들어왔을 때, 화잇 여사는 점심식사 준비를 지시하고 있었다.  살렘은 매우 실망해 있었다.  왜냐하면 그가 98피트까지 파내려 갔으나 단지 마른 흙과 모래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당신에게 물어볼 말이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당신에게 이 땅을 사라고 하셨습니까?” 라고 살렘이 질문했다.

“네, 물론이죠.” 화잇 여사는 열정적으로 대답했다.  “나는 세 번씩이나 바로 이 부지를 확보해야 된다는 계시를 보았습니다.”

“알겠습니다”라고 살렘은 대답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마실 물도 없이 그냥 코끼리만 주시지는 않으시겠지요.”

미처 한 시간도 채 못되어 그는 부엌 텐트로 되돌아왔다.  그는 마치 근처 지하에 강이 있는 것처럼 많은 양의 물이 흐르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샘은 그것을 엿듣고 자기도 그 강물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구멍 아래로 내려가도록 허락해 달라고 간청했다.  “좋아, 샘, 그러나 먼저 네 앞치마를 벗어 놔라” 화잇 여사는 웃으면서 말했다.
우물을 파는 사람들은 어린 샘의 주위를 밧줄로 묶고 구멍 안으로 그를 내려뜨렸다.  그가 빠르게 흐르는 물소리를 들었을 때, 그는 물이 갑자기 솟아 나와 자기를 덮치지나 않을까 하고 무서워했다.  그는 밧줄을 여러 번 잡아당겨서 신호를 보냈고 사람들은 그를 땅위로 끌어올렸다.  이번에는 살렘이 아래로 내려갔고 그는 물 이 스며나올 때까지 주변을 톡톡 두드렸다.  물은 신속하게 솟아올랐으며, 그는 연장을 바닥에 버려 두고 허겁지겁 위로 올라왔다.

그 날 밤 물이 18피트까지 솟아올랐다.  그 다음날 아침 사람들은 물을 길어 올렸고, 그 옆에다 수갱을 팠다.  결국 그 기관의 물 공급이 확보되었다.
반세기 후에 샘 해밀톤은 나에게 그의 개인적 경험을 말해주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교회 지도자들까지도 그 부지를 사는 것에 대해 예언자의 선견지명을 의심했다고 전해주었다.  미국의 어떠한 측지학 연구 지도에도 이 지역 지하에 강이 있다고 표시된 것은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거기에 물이 있다는 것을 아셨고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예언자에게 보이”(암 3:7)셨다.

“내가 어렸을 때 나는 한번도 예언자의 영감을 의심해 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샘 해밀톤은 회상했다. “그리고 내가 어른이 된 후에도 결코 그 일에 대해 의심해 본 적이 없습니다.  화잇 여사는 자신이 주장한 그대로, 또 교회가 그녀에 대해 주장한 바로 그대로입니다.  나는 그것을 압니다.  왜냐하면 내가 거기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직접 목격한 증인입니다...”파라다이스 계곡 요양원(현재 병원과 건강센터)의 설립 이야기는 SDA 백과사전 개정판 pp. 1078, 1079에 더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노쓰 피츠로이(North Fitzroy)에 살고 있던 헤럴드 M. 블런든(Harold M. Blunden)이 12세-13세 정도 되었을 때 미국인 여 예언자가 돌아오는 안식일 오후에 설교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헤럴드는 현대에, 그것도 미국인인, 더구나 여자인 예언자가 있다는 사실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그렇지만 헤럴드는 이 문제에 대하여 마음의 정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다음주에 일찍 집회장소에 가서 오른편 둘째 줄에 자리를 잡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거기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다 보고 듣기를 원하였다.

그날 오후 그곳은 서 있을 자리만 남아 있을 정도로 가득 찼다.  강단은 교회 지도자들로 꽉 찼으며 단지 중앙의 두 자리만이 비어 있었다.  엘렌 화잇이 타고 온 기차가 2시간이나 연착되었으므로, 참석한 목사들은 기다리는 동안 계속 노래와, 기도, 간증, 짤막한 이야기 등으로 청중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마침내 문이 열리고 명망있는 미국인 선교사인 A. G. 다니엘스(A. G. Daniells) 목사의 팔에 의지하여 왜소한 체구의 여 예언자가 걸어 들어왔다.  다니엘스 목사는 단상에서 그녀를 소개한 후에 뒷편에 비어있던 자리중의 한곳에 가서 앉았다.  엘렌 화잇은 단상에 서서 원고를 내려놓고, 원고를 정돈하고, 숄을 추스린 후, 정면을 보며 미소를 짓고 말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다소 놀란 듯이 보였으며, 청중들 또한 그러하였다.  천천히 그녀는 청중들을 둘러본 후, 단상을 내려다보며 다시 원고를 정돈하고, 숄을 추스리고, 정면을 보며 미소를 짓고 다시 말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러나 다시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예언자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교차되었으며, 청중들 사이에는 걱정의 파문이 퍼져나갔다.

다시 그녀는 청중들을 둘러보았는데, 이번에는 어느 특정한 사람을 찾고 있는 것처럼 더욱 천천히, 그리고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번에 그녀는 멀리 보는 대신 뒤로 돌아서 그녀 뒤의 좌석에 앉아 있던 목회자들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나다니엘 데이비스(Nathaniel Davis)가 맨 끝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다니엘스 목사를 향하여 불신이 섞인 음성으로 말했다.  “도대체 이 사람이 왜 여기 단상에 올라와 있습니까?”

그녀는 청중들을 뒤로하고 있었기 때문에 거의 어느 누구도 이 엉뚱한 질문을 포착하지 못했다.  그러나 헤럴드 블런든은 앞에서 둘째 줄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이 말을 들었고 어안이 벙벙해졌다.  왜 나다니엘 데이비스가 그녀와 함께 단상에 있으면 안 된다는 말인가?  그는 조용히 자문해 보았다.  데이비스가 비록 재림신자가 된지 얼마 안되긴 했지만 그도 역시 지도자였다.  그는 오스트레일리아 재림교단 잡지인 Signs of the Times의 편집자였다.  그는 그 단상에 있을 권리가 충분하지 않은가!

갑자기 나다니엘 데이비스는 벌떡 일어섰는데 그의 큰 키는 왜소한 미국인 예언자를 압도했다.  그는 화잇 여사를 비난하면서 한 인간이 다른 사람에게 나타낼 수 있는 가장 증오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는 홱 돌아서서 성큼성큼 걸어 단상을 내려와서 통로를 따라나가 예배당 문을 박차고 나갔다.

침착한 자세로 엘렌 화잇은 단상을 향해 돌아서서 다시 원고를 정돈하고, 숄을 추스리고, 정면을 보며 미소를 짓고 입을 열었으며 마침내 목소리가 나왔다.  청중들은 그녀가 한시간 반 동안 이야기할 때 완전히 도취된 것처럼 앉아 있었다.  집회가 끝났을 때, 사람들은 화잇을 개인적으로 만나기 위해 문 쪽으로 몰려들었다.

어린 헤럴드는 문 쪽으로 가는 대신에 단상으로 향하였다.  그는 단지 이 이상한 현상의 의미를 알고 싶었다.  그는 설교 전체를 하나도 듣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의 머리는 여러 가지 생각들로 혼란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다니엘 데이비스는 심각한 문제들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래서 엘렌 화잇은 1897년 8월 16일에 5페이지나 되는 편지를 그에게 썼었다.  그녀는 그 편지를 새벽 3시에 쓰기 시작했다.  두 번째 페이지의 첫 단락은 그 다음날 새벽 2시 30분에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 편지를 이틀 후에 계속하여 썼다.  화잇 여사는 데이비스 형제의 금전적, 영적, 도덕적인 문제들에 대해 진술하였다.  “그대는 지금 부도덕한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대는 진리의 사업에 먹칠을 하고 있습니다. 그대는 어느 곳인가 홀로 남겨질 위험인물입니다.”Ellen G. White, Letter 27, 1888.

마치 어머니가 빗나간 아들에게 간청하듯이 그녀는 이 새로운 개심자에게 그의 잘못된 길에서 돌이킬 것을 촉구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녀의 충고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 안식일 오후에 그는 흑암의 왕국의 살아있는 대표자로서 앉아있었던 것이다.  나다니엘 데이비스가 사라지기 전에는 하나님께서는 빛의 왕국으로부터 온 그분의 대사로 하여금 말하도록 허락지 않으실 것이었다.헤럴드 블런든(Harold Blunden)은 이 이야기를 그의 설교문 “지구 마지막 세대를 위한 안내서” pp. 6, 7에서 언급하였으며 이것은 1958년 4월 12일의 연례 예언의 신 강조일을 위해서 화잇재단에 의해 출판되었다.

“나는 그때 이후로 엘렌 화잇에 대해서 아무런 문제도, 의문도 가진 적이 없습니다.” 헤럴드 블런든은 나에게 이 이야기를 해준 후에 회상에 잠겼다.  “당시 오스트레일리아에는 엘렌 화잇에 대해 의심과 불신이 있었지만 나의 마음은 결정되었었고, 나는 결코 그 결심을 바꿔본 적이 없습니다.  나는 압니다.  왜냐하면 내가 그때 거기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직접 목격한 증인이기 때문입니다.”

블런든은 얼마 후에 89세의 나이로 죽었으며, 나다니엘 데이비스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다.  나 또한 몇 년 동안은 알지 못했다.  어느 날 그 나머지 이야기에 대한 나의 관심을 잘 알고 있는 나의 동료 중 하나가 내 사무실로 찾아왔다.  그는 자기 손에 들려있는 서류를 열광적으로 흔들어댔다.

1900년에 엘렌 화잇이 오스트레일리아를 떠났을 때 교회 지도자들은 그녀에게 환송선물로 커다란 자전적 앨범을 주었다.  화잇 여사의 호주에서의 9년간의 사역동안에 그녀에 의해 축복 받은 사람들이 그 앨범의 각 페이지를 기록하였다.  그 페이지중의 하나에는 나다니엘 데이비스의 친필이 기록되어 있었다!

“엘렌 G. 화잇 자매의 사역에 대해 심심한 감사를 드리며, 당신의 백성들에게 그녀를 보내서 기별을 주신 하늘 아버지께 이러한 감사의 표현을 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짐에 대해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당신의 신실한 증언은 내가 강신술의 영향 때문에, 영적으로 거의 파멸지경에 이르렀을 때에 사단의 속박을 깨뜨릴 수 있는 방법을 내게 보여주었습니다.

나는 엘렌 G. 화잇 자매가 참 예언자임에 대해 확신할 수 있는 모든 적극적인 이유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과, 자비와 은혜와 진리의 주님께서 그녀를 끝까지 인도하시며 보호하시고, 그녀가 하나님의 남은 백성들에게 계속 경고하고 교훈하며 힘을 북돋을 수 있도록 그녀의 날을 연장시켜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N. A. 데이비스

기롱, 빅토리아, 오스트레일리아

1900년 8월 6일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예언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대하 20:20)는 말씀은 여호사밧왕이 B.C 850년 처음 말했을 그때나 지금이나 진리인 것이다.

사이트 정보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한국연합회
  • 고유번호증번호: 204-82-62040
  • 대표자: 강순기
  • 운영자: 이상용
  • 운영센터 : 02-3299-5294
Copyrightⓒ adventist.or.kr All right reserved.
Contact [email protected] for more infor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