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의명학교 출신 교육가 허연 선생 추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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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명학교 출신의 교육가 추담 허연(許然) 선생의 74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망우역사문화공원 내 허연 선생의 묘소에서 지난달 18일 열린 이번 행사에는 허연 선생의 아들 허달, 허일 선생. 손자인 허용 선생 등 유가족과 한국연합회 임상우 부총무, 목회부 송은영 주임, 학교법인 김승임 팀장 등 연합회 관계자. 그리고 서울삼육고 엄재관 교장, 교목 양동진 목사, 삼육서울병원 원목실 김종신 목사, 최원구 목사 등 20여 명이 자리했다.
허연 선생은 1896년 평안남도 순안군에서 출생했다. 1908년 러셀 박사가 의료선교사로 봉사하던 순안병원에 침식을 제공받는 급사로 들어간 것이 재림교회와의 인연이 됐다. 조수로서 러셀 박사를 보필해 일하며 영어와 병원 업무를 배우던 중 1926년 러셀 박사의 주선으로 20세의 늦은 나이에 순안의명학교에 입학해 학업을 병행했다.
1937년 6월 10일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누하동 자택에서 긴급 체포돼 서대문형무소에서 1년 2개월 동안 복역한 후 출소했다. 1949년 일제강점기 당시 얻은 옥고의 후유증으로 병석에 누웠으며, 그해 8월 12일 향년 5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도산 선생의 발치에 묻어 달라”는 유언에 따라 가족들은 망우리에 가족 묘지를 마련했다.
임상우 목사가 사회를 맡은 추모식은 헌화 – 국민의례 – 허연 선생 삶 조명 – 시 세계 조명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망우리 언덕의 십자가>(2021)란 책을 통해 허연 선생을 대중에 소개한 망우리역사문화공원 자문위원 김영식 작가는 허연 선생의 삶을 조명했다. 김 작가는 “유명하다고 훌륭한 삶을 살지 않았듯, 유명세가 덜하다고 그 훌륭했던 삶의 빛이 바래지 않는다. 허연 선생의 독립운동은 여전히 우리에게 큰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그는 “허연 선생은 독립운동 외적으로도 시문학을 통해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셨는데, 예술을 통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전달해 주신다. 삶은 짧지만, 예술은 긴 것처럼 허연 선생의 애끓는 마음은 시를 통해 더 오랫동안 후손에게 전해지고 그 생명이 유지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삼육대 글로벌한국학과 음영철 교수는 허연 선생의 시집 <박꽃>의 시 세계를 조명했다. 음영철 교수는 “선생의 시어에서는 우리 민족의 이미지를 발견할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하얗고 소박한 이미지의 ‘박꽃’을 꼽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박꽃을 통해 우리 민족의 드러내는 방법은 이는 다른 시인들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그만의 독특한 개성이다. 허연 선생이 박을 통해 본 이미지를 다른 시인들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듯하다”고 분석했다.
이어 홍성례 시낭송가가 허연 선생의 시 <박꽃>과 <소의 유언>을 차분한 어조로 낭송했다. 그는 낭송에 앞서 “멍에가 너무 무거워 입이 땅에 끌리도록 고개가 숙여진 소의 모습에서 일제강점기 때 한민족의 고단함이 읽혀 가슴이 미어졌다”고 짧게 소감을 전했다.
추모식 순서의 끝자락에서 허일 선생이 유가족을 대표해 인사했다. 허일 선생은 이런 자리를 통해 아버님의 삶과 뜻을 기릴 수 있어 정말 감사하다. 아버지의 나라를 향한 사랑을 전하고, 참석하신 분들께 감사를 전하기 위해 아버지의 시집을 준비했다. 시 속에 담긴 뜻이 여기 모인 모든 분께 전달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특히 이날 추모식을 위해 미국에 거주하는 증손자 벤자민 허 씨가 자리를 함께해 더욱 뜻을 깊게 했다. 그는 “증조할아버지께서 나라를 위해 어떤 일을 하셨는지 어렴풋이 느꼈지만, 이 자리에서 보니 이전보다 훨씬 분명하게 다가온다. 증조할아버지를 기억해준 한국 재림교회에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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