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드라봉사자 진한나 양의 ‘여기는 프놈펜’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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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07.1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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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자 한나 씨와 성은 씨의 어느 하루
한나는 잠에서 깨어난다. 세수를 하고, 거실로 가서 지난 밤 자기 전에 발송한 이메일이 잘 갔는지, 파일 업로드가 중단되지는 않았는지 확인한다. 대부분은 전송 실패메시지가 떠 있다. 그녀는 ‘빨리 보내야 결연이 빨리 맺어질 텐데...’ 조바심을 내며 다시 전송을 시도한다.
한나는 곧 성경을 펼친다. 모두가 잠든 새벽, 하나님과 한나는 단 둘이 만난다. 한나는 이 시간 하늘로부터 하루를 살아갈 힘과 능력을 제공받는다.
AM 04:00
하나님과의 오붓한 데이트를 마치고, 한나는 영어공부를 한다. 그녀는 좀 전에 읽었던 성경절을 영어로 한 번 더 읽고 영어성경 낭독 파일을 재생해 정확한 발음을 연습한다. 그리고 매일 새로운 영어단어를 외운다. 오전 6시까지는 인터넷이 무료이므로 영어공부를 마치고 한 시간 가량 블로그(www.cyworld.com/naivekid) 관리를한다.
AM 06:00
아침식사 당번을 자처한 한나. 아침이 준비되면 성은과 한나는 함께 아침예배를 드린 후 식사를 한다. 식사를 마치면 성은이 설거지를 하는 동안 한나는 씻고 외출준비를 한다.
AM 08:00
성은과 한나는 크메르어(캄보디아어)를 배우러 가기 위해 집을 나선다. 그녀들은 모래 먼지와 매연 때문에 눈을 가늘게 뜨고 입도 열지 않은 채 묵묵히 햇볕을 받으며 학원으로 걸어간다. 성은과 한나는 8시 20분부터 9시 20분까지 한 시간 동안 크메르어 수업을 받는다.
수업이 끝나면, 그들은 또 다시 걸어서 집으로 간다. 집으로 가는 길에 잠깐 시장에 들러 점심을 제공해 주시는 지역 담당자 분께 가져다 드릴 과일을 사는 것도 잊지 않는다.
AM 10:00
프놈펜 북부지역을 담당하는 잉 낭 목사가 한나의 집 앞에 차를 세워두고 기다리고 있다.
한나는 “짬 띡(잠깐만 기다리세요)”이라고 말하고는 집에 들어가 줄자와 체중계, 카메라, 약간의 구급약품 그리고 결연이 확정된 아이들에게 지급할 교육비와 후원물품들을 잔뜩 들고 나온다.
한나와 성은은 물건들을 차에 싣고 아이들을 만나러 간다. 후원자가 생겨 도움을 받게 된 아이들에게는 후원물품(쌀, 생수, 달걀, 교육비, 학용품 등)을 1주일 치씩 지급한다. 6월 둘째 주에는 미국에서 공부 중인 박윤식, 현식 형제가 방학을 맞아 단기자원봉사자로 캄보디아에 와서 한나와 성은의 일을 도왔다. 두 형제가 후원물품, 특히 무거운 물통을 날라줘 물품지급이 훨씬 수월하게 이루어졌다.
물품 지급을 마치고, 그녀들은 각 지역 담당자가 소개해주는 새로운 아동들의 집을 방문해서 아동 신상과 가정환경, 주거환경 실사를 한다. 취미와 가장 좋아하는 놀이, 장래희망에 대한 질문을 받은 아이는 눈이 반짝반짝 해진다.
아이는 외국인들이 나타나 자신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니 당황스럽긴 하지만 그런 관심이 싫지 않다. 아이는 엄마도 물어보지 않는 질문을 하고, 자신의 사진을 찍고 키와 체중까지 재는 이 외국 여자들이 마냥 신기하다.
성은과 한나는 가장 더운 10시부터 오후 4시에 이 모든 활동을 한다. 한나는 점점 까매져 가는 피부 때문에 속상하지만, 후원물품을 받고 환하게 웃는 아이들을 볼 때 보람을 느낀다. 성은과 한나는 집에 돌아와 짐을 내려놓자마자 한글교실 수업준비를 하고, 간단히 저녁을 먹는다. 그녀들은 몸에서 쉰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씻고 싶지만 시간이 없어 낮에 나갔던 모습 그대로 수업을 하러 간다.
PM 6:00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한나가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미리 와 있던 학생들이 한국어로 인사를 한다.
일찌감치 와서 선생님을 반갑게 맞는 학생들의 열성에, 한낮의 활동으로 지쳐있던 한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밝게 웃으며 “잘 지냈어요!”라고 화답한다.
6살부터 33살까지 다양한 연령층으로 구성된 20명 남짓한 학생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한국어 배우기에 열심이다.
PM 7:00
수업을 마치고 돌아온 성은과 한나는 물품지급 내역서를 작성하고 결연아동에게 생긴 변화를 정리하여 기록하는 한편, 서둘러 새로 만난 아동들의 신상을 개인별로 정리한다.
인터넷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되는 저녁 8시까지 부지런히 작성을 마쳐서 이메일로 보내야 아이들이 하루라도 빨리 후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녀들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각자의 책상으로 향한다.
한나는 아이들의 사진과 개인신상정보를 정리하여 신청서를 작성하고 성은은 가정환경조사서를 작성한다. 작성을 마치면 한나가 신청서와 가정환경조사서를 모아 아드라코리아 해외아동결연 담당자에게 이메일로 발송한다.
한나는 다음날 일어났을 때 파일 업로드가 중단되지 않아서 이메일이 무사히 발송되어있기를 바라면서 씻으러 간다. 잠옷으로 갈아입은 한나는 하루를 돌아보며 일기를 쓰고 9시 즈음 잠자리에 든다.
신성은 양의 캄보디아 일기 ... ‘이 사람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오늘도 몹시 더울 모양이다. 이른 아침부터 뜨거운 햇살이 내려쬐기 시작한다. 거울 앞에 서서 연신 선크림을 발라보지만 그 안에 비친 검게 그을린 나의 모습은 ‘이제 그만 포기하시지. 그래 봤자야’라고 비웃는 듯 하다.
준비할 때 빼먹지 말아야 할 것 중 하나는 우리의 점심식사다. 가난한 캄보디아 가정에 숟가락 하나를 더 올려 놓는 일이란 버겁기만 하다. 한 지역에서는 우리를 대접할 마땅한 음식이 없어 목사님께 돈을 받아 라면 3개를 사가지고 와 끓여준 적도 있다.
현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라면을 먹는데 얼마나 그분들께 미안하던지. 나도 저분들과 같이 굶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에 라면 맛은 느끼지도 못한 채 꾸역꾸역 넘겼던 기억이 난다. 그 일이 있은 후로 우리는 그들에게 최소한의 부담이라도 되지 않기 위해 빵이나, 과일 그리고 열심히 그곳에서 봉사하고 있는 church planer에게 줄 작은 수박하나도 꼭 챙긴다.
집을 나서자 작고 귀여운 차 한 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 차에 타는 순간부터 우리는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과 점점 가까워진다. 차가 캄보디아 시내를 빠져나가면 비좁던 포장도로가 사라지고, 흙먼지 길이 시작된다. 우기가 시작되면서 도로사정은 더 나빠졌다. 길은 띄엄띄엄 웅덩이를 만들었습니다.
‘덜컹 ... 덜컹’
얼마가지 않아 나도 모르게 온 몸이 흔들리고 위아래로 정신없이 움직인다. 웅덩이에 고인 흙탕물에서 마냥 해맑게 웃으면서 물놀이를 즐기는 꼬마들의 모습도 보인다.
그렇게 40분을 달려 도착한 San Sok 지역. church planer와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고 바로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찾아 걸어 나간다. 넓은 밭을 지나 좁은 골목길이 나왔다. 나무와 나뭇잎을 얼기설기 엮어 만든 집들은 작은 바람 한 점에도 들썩인다. 많은 차이도 없건만 외국인이라고 동네 꼬마들은 우리가 가는 곳을 졸졸 따라다닌다.
아이의 가정에 도착하면 먼저 신상조사를 실시한다. 아이의 이름을 확인하고, 생일, 평소에 좋아하는 놀이, 과목 등 전반적인 것들을 묻는다. 그리고 난 후 아이의 키와 몸무게, 건강상태를 체크한다. 아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주고받다보면 어느새 우리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든다.
아이의 신상조사는 많은 이야기들은 남긴다. 아이의 생일을 묻자 아이 엄마는 여성의 날에 태어났다거나 수요일에 태어났다며 멋쩍게 웃는다. 그리고는 장롱 깊숙이에서 출생기록표를 찾아와 알려준다. 한 생명이 날갯짓을 시작하는 그 기쁘고 특별한 날에도 가난한 삶의 짐은 평범한 날로 바꿔 놓고 말았다.
‘커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는 물음에 아이는 쉽게 공장일과 물통 닦는 일이라고 말한다.
더 많은 것을 보지 못한 아이에게 꿈이란 그저 현재 엄마가 하고 있는 일, 이웃 아저씨가 하는 일들이 전부인 듯하다. 동네 사람들은 아이 대답에 깔깔거리며 웃지만 우리 마음은 찡하게 아려온다.
신상조사 중 건강체크 항목에 빠지지 않는 건 아이들이 키와 몸무게다. 처음으로 올라가보는 체중계가 마냥 신기한가 보다. 일순 주위사람들의 모든 시선이 체중계 숫자에 집중된다. 저마다 결과가 뭐가 그리 신기하고 재밌는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열심히도 꺼내놓는다. 체중계 바늘이 좀 더 올라갔으면 좋겠건만 이번에도 역시나 제 나이 평균몸무게를 넘지 못하고 힘없이 멈춰버린다.
다음으로는 가정환경조사가 실시된다. 아이가 살고 있는 집은 어떻게 되어있는지, 다른 가족들은 누가 있는지, 하루에 가족이 버는 돈은 얼마인지, 가족이 가진 문제는 무엇인지 등이다.
이런 질문들은 물으면 물을수록 미안해질 때가 있다. 괜히 잊고 살았던 어려운 현실을 일깨워주는 것 같아 묻는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다. 2달러도 안 되는 소득을 말하는 부모님의 얼굴은 어느새 수심이 가득해진다. 어떤 부모의 눈에는 벌써 눈물이 그렁거린다. 순간 많은 생각들이 스쳐지나간다.
‘과연 이 사람들에게 우리가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아이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것은 마지막 순서다. 혼자 서 있는 게 멋쩍은지 자꾸 움직이고, 머리를 긁고, 바닥을 보며 괜히 먼지만 차고 있다. 아이의 예쁜 표정을 만들어주는 건 주위에 모인 여러 이웃들이다.
‘웃어라’ ‘다리는 모아라’ 여기저기서 코치하느라 다들 바쁘다. 모든 조사가 끝난 후 아이의 손을 잡고 “이제 넌 한국친구가 생기는 거야. 여자일수도 남자일수도 있어. 나이가 많은 친구일수도 있고, 너보다 어린 친구일수도 있어. 기쁘지?” 굳어 있던 아이 얼굴에 웃음이 잠시 머물다 간다.
집을 나서자 다시 뜨거운 햇빛이 내려쬔다. 살갗이 조금이나마 덜 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아래만 보고 다녔던 고개를 들어 잠시 하늘을 쳐다본다. 파란 하늘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유난히도 넓어보이던 캄보디아 하늘.
돌아오는 길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물통 닦는 일이 꿈이라던 아이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 아이에게 저 하늘과 같은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고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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