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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동료 중 한 명인 팀 레일은 짐바브웨에서 선교사로 봉사하던 중 참극을 당한 자신의 부모 이야기를 최근에 들려주었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백과사전』1의 내용을 각색하여 소개한다. -편집실
재림교인 교사인 돈 레일과 그의 아내 앤은 짐바브웨에서 선교사로 일하다가 1981년 자신들이 가르치던 학교에서 모잠비크 반군으로 의심되는 이들에게 새벽에 공격받아 잔인하게 살해당했다. 반군들은 남아프리카 군대의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그 일을 벌였고 레일 부부는 그들의 분노에 애꿎은 희생자가 되었다.
초기 생애와 교육
돈 레일은 1931년, 영국의 와이트 섬에서 태어났다. 청년 시절 그는 영국 공군에 입대해 모리셔스에서 근무하면서 한 프랑스인 가족들과 성경을 공부하고 재림교인이 되었다. 영국으로 귀국한 뒤 침례를 받고 뉴볼드 대학교에 입학했다. 한동안 레일은 스탠버러 출판소의 제판과에서 일했다.
1962년 3월 18일, 레일은 앤 E. 스미스와 결혼했다. 앤은 뉴볼드 대학교에 다녔고 졸업하여 성경 교사가 되었다. 그는 스탠버러 병원에서 일하며 런던 뉴갤러리 재림교회에서 성경 교사로 활동했다. 1966년, 스탠버러 인쇄소가 그랜섬으로 장소를 옮겼을 때 레일 부부도 함께 이사했다. 레일은 인쇄소에서 계속 일하다가 아내와 함께 그랜섬에 있는 스토크 로치퍼드 교육대학의 3년 과정 교사 양성 코스에 등록했다. 졸업 후 두 사람은 그랜샘에 있는 여러 학교에서 일했다.
아프리카로 가다
1975년 1월, 레일 부부는 로디지아(오늘날의 짐바브웨) 그웰로(현 그웨루)에 있는 교사 양성 대학에서 일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 나라는 이안 스미스 수상 정권과 민족주의 세력이 싸웠던 해방 전쟁에 뒤이어 불안정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1975년, 『브리티시 애드벤트 메신저』에서 소개된 편지에 따르면 레일 부부는 아프리카 생활에 잘 적응해 로디지아의 매력을 즐기고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정치적인 상황이 더 불안정하고 테러 분자들의 공격이 심해지고 있지만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의 피난처이자 힘이심을 믿는다.”2라고 그들은 편지했다. 내외는 2년 동안 그웨루에서 근무했고 두 아들은 인근 학교에 다녔다. 첫째 티머시는 기숙 학교에 갔고 앤드루는 통학했다.
1977년 8월, 내외는 그웨루 동쪽 17km에 있는 앤더슨 학교로 근무지를 옮겼다. 그웨루 지역의 상태가 불안정해 3년간 이곳에 있었다. 정규 교습에 더해 돈은 남자 기숙사를 맡았다. 1978년 7월, 그들은 두 아들 티머시, 앤드루와 함께 영국에서 휴가를 보낸 뒤 앤더슨 학교로 돌아간다. 1980년 4월, 로디지아는 독립 국가 짐바브웨가 되었다.
사망과 그 이후
1980년 12월, 레일 부부는 무타레시에서 90km 정도 떨어진 동부 짐바브웨의 이냐주라 중등학교(현 니야주라 재림교회 고등학교)로 이주했다. 니야주라의 빈자리를 채우라는 교장 대리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 1910년에 설립된 이 학교는 짐바브웨에서 가장 오래된 재림교회 학교 중 하나였다.3 1976년에 해방 전쟁으로 문을 닫았다가 1979년에 재개교했고 레일 부부의 부임은 학교 부흥책의 일부였다.
이제 막 학교에 적응하던 1981년 2월 3일, 레일 부부는 무장 괴한 두 명에게 공격받아 냉혹하게 살해됐다. 앤은 의자로 머리를 가격당한 뒤 가까운 거리에서 총을 맞았다. 돈은 도움을 청하기 위해 사무실로 달려가다가 총기를 든 그중 한 명에게 뭉툭한 물건으로 가슴을 가격당했다.4 돈은 쓰러졌고 현장에 있던 직원들이 그를 도우려 했지만 괴한은 그를 돕는 사람에게 총격을 쏘겠다고 협박했다. 괴한이 돈을 때려죽이는 모습을 그들은 망연자실하게 보고만 있어야 했다. 그런 다음 그 반군들은 직원들에게 민족주의자 구호를 강제로 복창하게 한 뒤 건물에서 빠져나와 어둠 속으로 도망쳤다.
레일 부부의 피살 소식은 전 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주요 언론들이 뉴스를 전했다. 부모가 사망할 당시 팀은 영국의 스탠버러 중등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었고 앤드루는 짐바브웨에 있었다. 팀은 짐바브웨로 날아와 장례식에 참석했다. 내외는 짐바브웨 불라와요에 있는 솔루시 공동묘지에 나란히 안장됐다.
1981년 3월 1일, 스탠버러 파크 교회에서 추모 예배가 거행됐고 왓퍼드 부시장과 지역 의원 한 명이 참석했다. BBC 방송이 아들 팀과 인터뷰를 진행했고 이후 형제는 곧 짐바브웨로 돌아갔다. 팀은 그 사건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 곧 있을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자신의 소망을 웅변적으로 말했다. 주요 일간지들은 이 이야기도 머리기사로 다루었고, 수많은 사람에게 그 존재조차 낯설던 영국 재림교회는 전국적으로 전례 없는 관심을 받았다.5
이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난 지 40년이 넘었고, 아들 팀은 여전히 하나님과 그분의 인도하심을 신뢰한다고 말한다. 복음 전파에 삶을 헌신한 이들에게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우리는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어떤 위기나 상황에서도 우리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하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어디에 있든지, 예수께서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우리는 그분을 따르는 임무를 수행할 것이다.
1 encyclopedia.adventist.org에 들어가 ‘Lale’을 검색하거나 아래 주소로 접속할 것. encyclopedia.adventist.org/article?id=EH3H&highlight=lale
2 R. D. Vine, “Open Letter—from well-known Britons serving in Rhodesia,” British Advent Messenger, February 18, 1977
3 “Institutions and Other Entities Located in The Zambesi Union Mission,” Seventh-day Adventist Yearbook (Washington, D.C.: Review and Herald Publishing Association, 1996), 118
4 D. N Marshall, “Tragic Deaths in Zimbabwe,” British Advent Messenger, February 13, 1981
5 W. J. Arthur, “Communication,” British Advent Messenger, July 24, 19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