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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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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사미디어 등록일 2024.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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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힘이 세다. 특히 사랑의 추억은 힘이 세다. 

수년 전 생애 중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서울살이를 위한 이삿날이었다. 포장 이사가 대세를 이루어 일반 이사를 하지 않고 포장 이사를 하기로 했다. 그러나 빨리 집을 비워야 하는 일정과 들어갈 곳의 변경된 시차로 이삿짐을 창고에 넣고 일주일을 보냈다. 짐을 보관한 창고에서 100여 미터도 안 되는 곳으로의 이사였지만 이삿짐센터는 도로비를 제외한 금액을 요구했다. 두 번의 이사 비용을 감당할 형편이 못 된 우리는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일반 이사를 했다. 짐을 정리하며 속상함과 감사함이 교차되었다. 조금 넓은 집에 살다 반으로 줄여 온 집에서의 정리는 생각보다 더디어서 쉬이 저녁이 찾아왔다.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다. 낯선 곳, 음식 배달조차 생각지 못하고 가스는 다음 날에나 연결된다고 하니 버너에 라면을 끓여 먹을까 하는 생각 속에 그동안 여러 번 우리의 이사에 끼니를 대접해 준 고마운 이들이 떠올랐다. 참 고마웠었구나. 사랑을 주셨고 사랑을 받았었구나. 나는 그때 얼마나 그 사랑에 고마워하였을까 하는 생각들이 스쳤다.

조금은 지치고 아직도 정리해야 할 짐들만 보이고 있을 때 “똑똑” 소리가 났다. ‘아는 사람이 없는데.’ 하며 문을 여니 안면도 없고 이름도 모르는 분이 서 있었다. “옆집 사는 사람입니다. 차린 건 없지만 밥 먹으러 오세요.” 하며 저녁 식사에 초대해 주셨다. 어색한 아이들이 가지 않겠다고 하여 남편과 나만 불러 준 성의가 고마워 옆집으로 갔다. 우리 집보다는 훌륭하지만 소박한 주인의 성품이 묻어나는 집이었다. 역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어수선함도 있었다. 옆집 주인은 자신도 10여 일 전에 이사 왔노라고 했다. 이사 정리하며 저녁때가 되어도 아무도 불러 주지 않는 서울 인심이 야박하다고 생각하며 아이들과 나가 저녁을 사 먹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옆집 사람에게는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아 불렀노라고 했다. 저녁상은 소박했다. 공부로 인해 잠시 떨어져 있던 아들이 오는 날이라 생선 한 마리 더 구웠다고 했다. 소박한 살림, 소박한 밥상이었지만 따뜻한 마음 부자, 주인 부부의 모습에 찡한 감동과 감사가 밀려왔다. 너무 고마웠다. 수년이 지났지만 나는 그날, 그 저녁 시간의 풍경을 생생히 기억한다. 그때 나도 결심했다. 내가 받은 이 사랑의, 마음의 밥상을 누군가에게 대접하겠노라고. 


유학생과 같았던 우리 삶의 공간에 이후로 몇 집이 더 이사를 왔다. 나는 내가 받았던 사랑의 밥상을 기억하여 몇 번을 차렸다. 후에 여러 번의 밥상을 차려 보았지만 그때 받았던 그 감동을 다 전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가진다. 그 경험을 통해 나는 사랑받음이 사랑을 주는 원동력임을 깨닫게 되었다. 사랑을 받은 경험을 가진 자가 사랑을 베푼다. 사랑받음이 마음에 채워질 때 사랑이 흘러갈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이유 없이, 대가 없이 받은 작은 선물이나 말은 내 마음에 사랑을 채운다. 또한 나도 남에게 이 기쁨을 주고자 하는 마음의 동기를 일깨운다. 내가 무언가 사랑의 행동과 말을 한다면 먼저 사랑을 받았음이 있는 것이다. 이 진리를 깨달았을 때 성경 말씀이 그렇게 감동으로 다가올 수 없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 4:19).“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아!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먼저 사랑을 주셨다. 사회와 주변을 둘러보며 사랑 고픈 이들의 모습을 본다. 사랑 고픈 이들의 모습은 상대를 찌르고 비난하고 거친 행동과 말을 드러낸다. 나의 눈에 사랑이 고파 몸부림치는 모습이 보인다. ‘누가 이들을 먹이고 채울 것인가?’라는 질문을 수없이 해 본다. 먼저 사랑을 경험한 이들을 통해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이 실망스럽고 슬프며 아픈 이들에게 어떻게 다가갈 수 있을까?’ 나는 해답을 성경에서 찾았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 후 제자들은 말할 수 없는 실망과 아픔으로 밤이 새도록 고기를 낚았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처럼 배는 텅 비었다. 어둠이 밀려가는 새벽녘, 해변가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신다. 그리고 말씀하신다. “와서 조반을 먹으라”(요 21:12). 배를 채워 주신다. 이후 제자들은 목숨을 바쳐서 받은 사랑을 전하였다.


사회 분위기가 많이 변하였다. 혼밥족을 향한 마케팅이 호황을 누린다. 현실을 보면 어쩔 수 없음에도 표현할 수 없는 아쉬움이 있다. 상 하나에 거창하지 않은 반찬과 밥을 두고 옹기종기 앉아 밥을 먹었던 추억이 있어서 그런지 혼밥의 상은 달갑지 않다. 가족을 식구라고도 부른다. 함께 밥을 먹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바쁜 사회로 이제 그 단어가 희미해져 가는 것은 아닌지. 언제부터인가 매식, 외식의 문화가 친숙해지고 있다. 어머니나 아내의 헌신으로 차려지는 밥상을 이성적으로 성평등으로 불합리함을 호소하는 문화가 내게 어색하고 아쉬움은 나이가 든 때문이기도 하고 사랑의 밥에 대한 추억 때문이기도 하다.


어느덧 신앙생활 안에서도 허물없이 집으로의 식사 초대가 사라져 가는 것 같다. 아름답고 좋은 유산이 사라져 가는 듯 아쉽다. 조금은 냉랭하고 불편한 이들에게 정성 담은 한 끼의 밥상을 차려 줘 보자. 한 끼의 밥은 힘이 세다. 내가 경험하여 먹어 보았고 차려 주어 보았다. 밥은 정말 힘이 세다. 나는 소망해 본다. 소박하지만 위대한 한 끼의 밥상을 차려 내는 마음을 늘 가질 수 있기를, 거창하지 않아도 언제든 나의 한 끼에 기꺼이 동참하기를 초청하는 사람이 되기를.한 끼의 밥상, 그 밥상은 힘이 세다. 



​윤점순 ​영문학 전공, 주부, 자유기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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