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신계훈 목사 채 못다한 마지막 인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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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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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0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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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 구구절절 교회사랑 배어
고인은 특히 “생명의 심지에 불꽃이 타오르도록 소원하신 성도들의 기도는 구름처럼 하늘에 올라 하나님 앞에서 합창하였다”며 “그 기도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는지 후일 하나님께 물어보자”며 자신의 죽음으로 비탄에 빠질 성도들을 오히려 위로했다.
우리 시간으로 16일(월) 로마린다 한인교회에서 열린 고인의 추모예배에서 생의 마지막 여정을 함께 했던 반상순 장로가 정리하여 낭독한 고인의 마지막 인사말을 옮겨본다.
존경하는 동역자, 그리고 사랑하는 국내외 성도 여러분,
그 동안 베풀어주신 가슴이 메어지는 사랑을 뒤에 두고 이렇게 황황히 떠나게 됨을 죄스럽게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애타는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저를 불쌍히 여기셔서 제 생명의 시계를 여기까지 늦춰주셨음을 감사드립니다. 이제 하루 일을 끝내고 땅거미가 질 때 농부에게 밀려오는 피곤함이 제 몸에 밀려옵니다.
눈을 감기 전에 우리를 실망시킨 노독들의 이야기 야곱과 제임스 화잇과 엘리야의 이야기, 암 환자들이 쓰고 싶어하는 투병 이야기 인생길에 스쳐지나간 아름다운 이야기, 목사로서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가슴에 새겨둔 이야기, 참으로 하고 싶은 많은 이야기들을 글로 남길 수 있기를 소원하였지만 주님께선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물동이를 배에 안은 듯 만근 같은 배와 천근같은 다리와 답답한 가슴과 어지러운 머리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힘들수록 하나님의 말씀은 점점 내게 가까이 옵니다. 즐겨 부르던 복음성가의 가사처럼 ‘등 뒤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침묵으로 말씀하시는 하나님... 말씀만 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합 3: 17-19)”
이제 주께서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려는 것일까. 삶을 정리하면서 사랑을 나눈 성도들에게 마지막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모든 것을 바쳐 주님을 마음껏 사랑하시고 분골쇄신하도록 몸 되신 교회를 섬겨 주십시오. 그래야 마음의 평화가 있고 삶의 후회가 없습니다.
모든 것이 뿌리부터 뒤흔들리는 이 격변의 시대에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를 가진" "그 여자의 남은 자손"인 우리의 고유한 정체성을 철두철미 고수해 주십시오. 그것은 세 천사의 기별을 위임받은 남은 교회의 분명하고도 확실한 사명입니다.
한국교회 성도 여러분, 그 동안 그토록 성원해 주시고 참고 기다리시며 애타게 드려주신 기도는 하나님이 들으셨습니다. 포근히 감싸주시고 때마다 모든 필요를 아낌없이 채워 주신 미주 성도들의 진심 어린 사랑을 우리 하늘의 아버지께서 다 보셨습니다. 세계에 흩어진 선교사, 나그네 성도 여러분, 공간을 초월하여 드려주신 간절한 기도와 아낌없는 격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머리 둘 곳 없는 저에게 한국에서 또 미국에서 있을 곳을 마련해주신 성도님들 참으로 고맙습니다. 그리고 너무너무 사랑합니다. 참으로 좋은 우리 교회, 참으로 좋으신 우리 하나님, 감사합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예수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 1: 6)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 1: 2). 여러분들에게 드리는 감사의 말씀입니다.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지난 40개월의 어설픈 목회와 행정사역을 이렇게 서둘러 끝내고 가는 저의 심정은, 40년의 고달픈 광야 사역을 끝내고, 느보산 정상에 올라 요단강 너머 약속의 땅을 바라보는 모세의 절절한 심정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를 부르셨을 때 당황하였듯이 저는 책임을 맡고 난 몇 주 동안, 제 일생에 그렇게 많이 울어본 적이 없습니다. 낮에도 울고, 밤에도 울었습니다. 총회를 치르면서 표출된 우리의 현실이 너무도 슬퍼서 울고 모든 것이 암담하고 사방이 막막한 때 힘이 없고 부실한 제게 지워진 짐이 너무 무거워서 두려워 울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비전이 없는 사회나 백성은 망할 수밖에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비전 100」을 세웠습니다. 이 계획은 책으로 쓰는 계획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지도자와 백성의 피와 땀과 눈물과 기도로 추진해야하는 계획입니다. 이 계획을 추진할 땀과 피와 더 이상의 눈물이 제게 없었던 것일까요. 하루하루가 힘들고 쉬고 싶은 충동이 제게 있습니다.
복음의 멍에를 함께 멘 친애하는 동역자 여러분, 목회자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예수님처럼 성도들 마음에 와 닿는 말씀으로 성도들 가운데 거하고, 성도들의 필요를 아는 목회자로서 백성들 안에 거해야 합니다.
부디 양을 위하여 목숨까지 버리신 선한 목자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본을 따라, 몸 되신 교회를 끝까지 힘껏 섬겨주시고 성령 충만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목회 동역자 여러분들을 진심으로 신뢰하고 사랑합니다.
한국교회의 장래는 어린이, 청소년교육에 달려 있습니다. 청소년들이 복음으로 양육되고 있는 우리의 교육기관은 선교인력 생산공장이요, 어린이, 청소년전도의 황금어장이며 문전옥답입니다.
그것은 한국교회의 힘이요, 희망이요, 백년대계입니다. 학사 에스라의 간절한 심정으로 한국교회의 생사가 달린 교육사업을 끝내 아름답게 가꾸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각급 학교에서 밤낮 헌신하시는 교육선교 동역자 여러분, 그리고 미래의 주인이 될 학생들을 철썩 같이 믿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예고 없는 죽음의 부름으로 여름 장막 부흥회의 초청을 기약 없이 미루고 이렇게 서둘러 가면서 아직도 남아 있는 근심은 무엇이 한국교회의 획기적인 발전과 영적 부흥을 초래할 성령의 임재를 지연시키고 있는가 하는 고뇌입니다.
저는 그것이 예수님의 마지막 고뇌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의 지상 생애가 끝나 갈 때
제자들은 서로 "누가 크냐, 누가 지도자가 되느냐"는 리더쉽 논쟁에 몰두해 있었습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교회에 약속된 마지막 성령은 지체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가 나라의 정치풍토 같다면 어떻게 성령이 교회에 임하시겠습니까!
지역적 편견으로 나뉘고, 개인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리저리 엉키어 서로 담이 막힐 때, 성령은 결코 임하실 수 없습니다.
성령께서는 백성들이 서로 교제하며 사도의 말씀을 따라 말씀과 기도에 전혀 힘쓸 때 임했습니다. 성령이 우리의 기관사업에만 아니라, 백성들의 마음과 교회에 임하실 수 있도록 엎드려 탄원합니다.
한국교회가 부흥해야 불쌍한 우리 민족이 살고 한국교회가 아니면 이룰 수 없는 북방의 동포들이 삽니다. 북방에서 모진 핍박을 받는 우리 동포를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습니다. 이른 비 성령으로 시작된 복음사업이 약속된 늦은 비 성령으로 그 빛이 밝아져야 주님이 오셔서 갈수록 괴롭고 살기 힘든 이 세상이 하나님의 나라로 바뀔 것입니다.
저는 우리의 영적인 어머니인 교회가 이단으로 오해받는 것이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분하여
제게 베푸신 은혜를 조금이나마 보답하고자 안간힘을 다하여 「어두움이 빛을 이기지 못하더라」는 책을 썼습니다.
제가 먼저 가더라도 남아 계신 성도들께서 고마운 우리 어머니 교회의 누명을 벗겨 주시고
마지막 참 교회의 진상을 밝힘으로 의로운 해로 옷 입은 정결한 여인의 명예를 회복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제가 마지막으로 드리는 부탁입니다.
이제 한 인간으로서 제 고마운 아내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여보! 우리가 결혼 한지 어언 31년이 되었구려. 말로는 31년을 살았다고 하지만 당신과 지낸 시간이 실로 얼마나 되는지... 며칠 전에 당신이 말했소. 지난 일년 로마린다에 와서 보낸 시간이 제일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바쁜 시간들 틈에 들로 산으로 골짜기로 거닐면서 신혼 때 못 다한 말들을 나누던 때가 좋았다고. 얼마나 주변 없는 남편이었으면 눈떠서 잘 때까지 수치료에, 안마에, 까다로운 음식 준비에 바빴던 일년이 제일 행복했을까 생각하며 흠칫 자신을 돌아보았소.
그러고 보니 결혼해서 지금까지 31년 동안 휴가 한번 가져보지 못했소. 아니지요. 휴가는커녕 남들이 흔히 한다는 외식 한번 가족들과 함께 가져보지 못한 남편이었소.
어제는 생명의 불꽃이 꺼져가는 것을 느끼면서 "당신에게 내가 사랑스런 남편이었오?" 하고 물었더니 당신이 장난끼 섞인 모습으로 "아니 사랑스럽진 않았지요. 그러나 자랑스런 남편이었지요" 라고 대답하여 "그것도 괜찮네" 하고 대답했지만 그날 밤 나는 문득문득 잠에서 깨어 그 말을 씹어보았답니다.
그리고 속으로 외쳤어요. 나는 당신에게 자랑스런 남편이 아니라 사랑스런 남편이 됐어야 했오."
철창에 걸린 둥근 달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구나. 새들아 강아지야 고양들아! 건강한 너희들이 부럽다. 나도 그렇게 자유로울 수가 있다면 아내로부터 사랑스런 남편이란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살아보고 싶구나. 그게 그렇게 힘든 일은 아니었을 텐데, 왜 내게는 그 일이 그렇게 어려웠을까. . .
여보, 당신을 만나 산 지난 31년은 내게 너무나 소중한 날들이었소. 이제야 그 날들의 소중함을 깨달으니 인생은 죽을 때까지 배워도 다 배우지 못한다는 선인의 말이 새삼스럽소. 많은 떡 보다는 적은 떡을 아끼며 먹는 맛이 각별하듯이 많은 날 보다 하루하루를 사는 삶이 이렇게 소중할 줄이야... 글쎄... 내가... 불확실한 미래... 죽음은 두렵지 않다.
측은하고 그리운 자식들아!
고마운 당신을 혼자 두고 떠나야하는 이 마음이 왜 이리도 떨리는지. 이렇게 힘든 투병보다 차라리 지나친 헌신이 얼마나 더 나은가!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긍휼히 여기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나의 영혼도 심히 떨리나이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인자하심을 인하여 나를 구원하소서"(시 6: 2-4)
모든 것이 나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느끼는 오늘 욥을 생각했소. 왜 하나님께서 욥에게 일년간의 긴 고통의 시간을 주셨을까? 욥은 그 긴 시간동안 무슨 생각을 했을까? 욥이 그 고통 중에서도 하나님을 놓지 않고 꼭 붙든 힘은 어디에 있었을까?. . .
고마운 아내가 곁에 있고 사랑스런 정은이와 승원이의 따뜻한 눈길이 곁에 있고 믿음직한 성도들의 안위와 기도가 함께 있으니 어찌 나의 고통을 욥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함께 살고 싶어 했던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억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또 다른 아픔으로 이 연약한 육신이 떨고 있습니다.
아빠의 배가 아프니 내 배가 아프다던 정은이!
아빠의 부끄럽지 않은 아들이 되겠다는 승원이!
또 어머니 같은 누이와 또 매부들 모두 모두 사랑합니다.
함께 있지 못한 날들이 아쉬워 몇 년 후에는 곁에 살면서 못다한 사랑을 나누리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서둘러 떠나게 될 줄이야... ... 이제 떠나면서 가족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사랑합니다."
몸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교회를 섬기리라 생각하며 할 일을 셈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누워서 병과 싸우고 있다니 참으로 제 모습이 처량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도 변치 않은 우정과 성도의 고귀한 사랑을 보여주신 아름다운 사람들, 인터넷으로 격려의 말씀을 아끼지 않으신 세계 각처에 흩어져 있는 정감 넘치는 네티즌들, 모두 모두 사랑합니다.
특히 지난 일년 동안 곁에서 제 병을 관리해준 아들과 같은 이준원 박사의 노고를 무엇으로 갚을 수 있을까요. 내 마음은 아들의 노고에 보답하여 어엿한 걸음을 걷고 싶었지만 매양 뒤뚱거린 모습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날, 사슴같이 뛰는 모습으로 그간의 노고가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드릴 것입니다.
저를 위해 쉬지 않고 기도드리신 성도님들, 기도는 자기의 소원을 아뢰되 자기의 뜻이 성취되기를 소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생명의 심지에 불꽃이 타오르도록 소원하신 성도님들의 기도는 구름떼 처럼 하늘에 올라 하나님 앞에서 합창하였습니다. 그 기도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는지 후일 하나님께 물어보십시다.
여러분들의 기도의 합창 소리를 하나님께서 들으셨음을 인해 감사드립니다. 다시 뵈올 때까지 믿음의 씨, 희망의 씨, 사랑의 씨를 묻고 기도로 물 주어 기쁨의 꽃이 피도록 말씀의 씨앗들을 정성껏 가꾸시기 바랍니다.
슬픔과 절망과 고뇌의 불로 구워낸 빛나고 단단한 보석들처럼 침묵의 땅, 어두움의 땅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 가슴속에 풀잎처럼 돋아난 아기자기란 느낌들과 침묵 속에 키워둔 많은 말들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도란도란 나누게 될 것입니다.
고후 1: 9, 10을 읽어 드립니다. 힘이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나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한 이후에라도 건지시기를 그를 의지하여 바라노라.
사랑스런 가족들, 고마우신 동역자들, 믿음직한 성도들, 북방에 계신 사랑하는 성도들, 암으로 고통 중에 있는 환우들, 모두모두 사랑합니다. 우리 모두 하늘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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