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중앙교회 봉헌되기 까지 ... 경과보고
페이지 정보
정리=김범태 기자
[email protected]
입력 2002.10.29 00:00
글씨크기
본문
교회사명 완수 위해 최선 다할 것
■초기사
지금으로 부터 60여년 전인 1941년 허석 씨 부부와 김진옥 씨의 가정예배로 묵호지역의 복음화는 시작되었다.
1946년 묵호로 파견된 반내현 전도사의 전도회에 감리교, 장로교에서 100여 명의 영혼이 침례를 받아 개종하는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다.
이후 예배소가 조직되었고, 1948년 성전를 건축하고 8월에 헌당을 하였다. 이는 해방 후 한국교회에서 이루어진 최초의 성전 신축이었다.
그 후 성전 건물은 노후하였고, 많은 인원을 수용하기에 공간도 턱없이 부족하여, 교회건축의 필요를 절감하였으나, 시행되지 못하던 중, 고 조병혁 목사의 1,000만원의 헌금을 계기로 2억원의 헌금을 모아 1994년 평릉동에 전 500평을 성전신축부지로 매입하였다.
그러나 그 해 12월에 토지개발공사에서 택지개발지역으로 지정하여 교회 신축은 다시 시작되지 못하였다.
■드디어 시작된 새성전 건축
1996년 박광수 목사가 부임하자 성전신축부지로 계획했던 평릉동 땅이, 건축은 물론 매각도 여의치 않음에 따라 그 해 12월 구성전을 헐고 그 자리에 성전을 신축하기로 결정하였다.
건축위원장에 안승간 장로를 임명하고, 건평 400평에 총 공사비 6억7,000만원의 예산을 책정하여, 설계는 맥그로리 설계회사의 안문효 씨에게, 건축은 본 교회의 박의현 장로에게 도급으로 맡겨 아름다운 새성전에 대한 기대 속에 1997년 10월 27일 성전기공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건축은 시작되었으나, 기초 작업 중에 박광수 목사는 동중한합회로 발령이 나고, 김영일 목사가 새로이 부임하였다.
이후 H빔 골조공사는 1년 만에 마무리되었으나, 뜻하지 않은 국가적인 IMF 경제파동으로 공사비용이 불어나 지하까지 공사를 마치고 기공 후 14개월 만인 1998년 12월 19일 교회 지하층에서 입주예배를 드렸다.
그러나 공사 지연으로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1998년 말까지 어린이집을 개원하는 조건으로 3억원을 대출받았으나 공사가 지연됨에 따라 어린이집 개원이 불가능하게 되고, 대출금도 해결해야하는 위급한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러나 김영일 목사의 부단한 수고로 1층 공사를 마무리하고, 최종시한인 1998년 12월 31일 극적으로 어린이집 인가를 받아 고비를 넘겼다.
이후 5개월여 동안 재정의 어려움과 예상보다 길어지는 건축기간으로 성도들이 거의 탈진상태가 되어버려 더이상 건축을 진척시키지 못하고 있을 때 최명섭 장로가 선뜻 7,000만원을 헌금하고, 1999년 5월 8일 몇몇 신자들이 뜻을 모아 다시 직영 공사가 시작되었다. 낮에는 직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모여 늦은 시간까지 작업을 하는 힘든 공사였다.
같은해 10월 9일, 2층 본당에서 드리는 안식일 첫 예배는 그간의 고통과 감격이 뒤엉킨 감동의 현장이었고, 교회는 곧 울음바다가 되었다. 건물 내부공사가 마무리된 후, 2000년 3월 김형렬 목사가 새로 부임하면서 4층 교회 사택으로 처음 입주하였다.
2000년도로 넘어오면서도 계속해서 내부 공사가 진행되었으며 여러 차례의 호소문을 미주지역과 한국교회에 보내어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의자를 들여오고 3층의 자모반을 나누어 어린이반 교실로 활용하도록 하였으며, 교회 찬양대석을 설치하게 되었다.
그러나 동해중앙교회의 가장 큰 부담은 교회를 건축할 당시 융자받은 3억여원의 청산되지 않은 자금. 한달에 230여 만원이나 되는 이자부담은 물론 헌당을 하지 못하는 것이 큰 짐이었다. 건축을 시작한지 4년째 되던 해인 2001년 동해중앙교회 선교 60주년을 맞아 헌당을 계획하고 건축헌금을 작정하였지만 부채를 해결하기에는 많은 금액이 부족하였다.
이후 교회건축을 시작한지 5년이 되어 2002년도에 들어서 2월 16일에 갈옥렬 장로를 위원장으로 하는 헌당추진위원회를 결성하게 된다. 김형걸 목사의 부임 이후 헌당추진위원회는 8개월 동안 14회의 모임을 갖고 교회 헌당을 위한 다방면의 방법을 모색하던 중 성도들의 희생과 협력으로 교회 소유의 평릉동 부지를 매각하게 되었고, 뜻이 있는 분들이 다시 희생적인 헌금을 드려 지난 수년간 교회의 큰 짐이 되었던 부채를 해결하게 되었다.
이후 헌당이 결정되자 교회는 기도회로 한마음이 되기를 간구하며, 매 일요일과 공휴일 뿐 아니라 수시로 시간을 내어 건물을 재정비하고 공사가 미진한 부분들을 마무리하였다. 이 일에 모두가 기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참여하여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이루어짐으로 2002년 10월 26일 간절히 소원하던 역사적인 새성전을 봉헌하기에 이르렀다.
■힘들었던 이야기
1997년 가을을 기해서 우리나라를 6.25 이후의 최대의 파국으로 몰고 갔던 바로 IMF의 위기. 하필 그 때였을까? 20여년의 기다림과 숙고 끝에 드디어 동해중앙교회의 신축이라고 하는 희망의 첫 삽을 들자마자 터진 IMF의 위기는 교회를 깊은 수렁에 빠뜨렸다.
모든 건축 자재비들이 두 배 이상 뛰어오르게 되어 넉넉지 못한 재정과 예산으로 시작한 동해중앙교회 신축공사는 첫 번째 위기를 맞게 되었던 것이다.
성도들의 경제적 부담이 큰 짐이었다. 건축자금이 제대로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건축이 시작되어 교회는 많은 자금을 대출받게 되고, 경제적 상황이 어려워짐에 따라 사채까지 빌리게 되므로 많은 재정적 부담을 겪게 되었다.
이에 따라 교인들 역시 수차례의 건축헌금으로 경제적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 동해중앙교회의 두 여집사님께서는 교통사고와 의료사고로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두분의 부군들의 생명의 값을 교회건축헌금으로 헌납하시는 헌신을 보였다. 이러한 일들을 계기로 교인들은 더욱 헌신하여 헌금하게 되었다.
건축에 대한 인식부족도 큰 문제였다. 열정은 넘쳤지만, 설계에서부터 계약과 공사자재의 인식 부족으로 많은 시행착오 속에 어렵게 건축을 진행하면서 결국에는 직영을 하는 사태에 처하는 과정을 겪게 되어 많은 고생을 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도움들
이런 위기들을 극복하는데는 동해중앙교회를 남의 교회로 여기지 아니하고 한 형제, 한 식구로 생각하며 염려하고 기도해준 여러 우리의 믿음의 형제들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연합회와 합회는 물론 140여 교회와 목회자, 그리고 성도들의 도움이 동해중앙교회가 오늘 하나님께 봉헌되는데 큰 힘이 되었던 것이다.
그동안 동해중앙교회를 거쳐간 여러 목회자들, 이 지역 출신 성도들, 멀리 미주지역에서도 이 교회의 어려움을 듣고 도움을 준 사람들, 교회 내부에 필요한 각종 성구기구들과 의자와 음향시설을 헌납해 주신 여러 믿음의 성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특별히 밀양에 계시는 이종대 장로는 지체 1급 장애자로서 당신의 사업이 어려움에 처해 있으면서도 동해중앙교회의 사정을 들으시고 나의 일보다도 하나님의 일을 위해 먼저 헌신하시겠다고 하시며 본 교회를 도와 주셨다. 그분이 보내주신 눈물의 편지는 동해중앙교회 모든 교우들에게 다시 한번 하나님을 위해 헌신해야겠다고 하는 큰 결심을 하게 하였다.
동해중앙교회는 오늘의 성전 봉헌을 계기로 더욱 한 마음으로 교회를 사랑하고, 받은 교훈과 사랑을 다시 보답하며, 이 지역의 교회적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동중한 합회의 가장 모범적인 교회가 될 것이다.
*자료제공 = 동해중앙교회
특집
-
인공지능 시대, ‘목회자’는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2024.10.24
-
인공지능 시대, ‘재림성도’는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2024.10.24
최신뉴스
-
[현장 인터뷰] “초기 선교사들의 희생 결코 못 잊어” 2024.11.14
-
[현장 인터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고한 ‘돕는 손길’ 2024.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