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신성식 전 교장이 새해를 맞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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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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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2.12.23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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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여 년 동안 손수 그린 연하장으로 신년인사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에서 만난 신성식 전 교장. 구순이 가까워진 원로는 이곳에서 자그마한 텃밭을 일구고, 틈틈이 작품활동을 하면서 지내고 있다. 얼마 전에는 교직 은퇴 후 20년간 직접 기른 소나무 100주(5000만 원 상당)를 삼육대에 기증하기도 했다. 나무가 제법 자라 자태를 갖추자, 혼자 보는 것보다 많은 이들과 함께 나누면서 즐거움을 느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결심을 행동에 옮겼다.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은 건 한 면을 가득 채운 연하장이다. 1958년부터 60여 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손수 그리고 만들어 보낸 것들이다. 이렇게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지극한 정성으로 신년인사를 이어온 이는 아마도 그밖에 없을지 싶다. 그동안 몇 차례 이사 다니며 잃어버리고 훼손된 것도 적잖은 양일 터. 실제로는 이보다 수십 배는 더 많을 것 같았다.
마디마디에 세월의 흐름이 그대로 묻어있는 이 작품들은 그 어느 대작에 견줘도 뒤지지 않는다. 그 자체로 인생이자 세계관이 녹아 있다. 고전 미인도를 연상케 하는 인물화부터 사군자와 산수가 화폭에 담겼다. 농담(濃淡)을 서로 달리한 화법은 한국의 미를 고고하게 품고 있다. 금방이라도 꽃망울을 터뜨릴 듯한 묘사는 생생하다. 채색은 수수하지만, 깊이 있는 입체감이 몰입을 더한다. 과연 서울대학교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대가의 솜씨다.
맞은편에는 1994년 김영삼 대통령 당시부터 역대 대통령에게 보낸 연하장이 전시돼 있다. 국가와 사회, 가정에 평안함이 가득하길 축원하는 덕담도 빠지지 않았다. 추사체를 닮은 힘 있는 필체가 돋보인다. 한국 현대사의 중심에 서 있던 인물들은 청와대에서 고마움의 답장을 보내왔다.
한켠에는 염색 물감으로 그려 넣은 손수건이 가지런히 걸려있다. ‘마음의 즐거움이 양약이라’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등 우리에게 친숙한 성경 구절이 국화, 매화, 난초, 포도송이 등 갖은 소재에 안겨 여백을 채웠다. 2020년 미스 춘양 진에 선발된 손녀에게 보낸 이몽룡의 한시에서는 할아버지의 정감과 사랑이 느껴진다.
재작년 환갑을 맞은 아들에게는 맹자가 ‘인생삼락’이라 일컬은 仰不愧於天府不怍於人(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고 땅을 굽어보건대 사람들에게 죄를 짓지 않은 것) 父母俱存兄弟無故(부모가 다 살아계시고 형제들이 무고한 것) 得天下英才而敎育(천하의 영재나 후학들을 얻어 가르치는 일) 등 지혜의 글을 실어 건넸다. 세상 어디에서도 받을 수 없는 보물이다.
연하장이나 손수건은 보기에는 작고 쉬워 보여도 결코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크기도, 재질도, 내용도 모두 제각각 다르다. 그해에 가장 어울릴만한 문구와 그림을 정하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실수 없이 그리기 위해서는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직접 먹을 갈아야 하고, 물감을 한 번 짜면 10분 이내로 완성해야 하기 때문에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그만큼 고되고 어렵다. 보통 정성이 아니고서는 엄두가 안 날 일이다.
해가 바뀔 때면 함께 교편을 잡았던 동료 교사나 친구, 존경하는 지인들에게 보내줬다.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이나 취업으로 사회에 진출하는 사람 또는 해외로 유학 가는 학생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써서 선물하기도 했다. 좀 더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어 어떤 이는 표구를 하고, 어떤 이는 집안의 제일 잘 보이는 곳에 놓아두고 자랑삼기도 하고, 어떤 이는 가보로 물려주겠다며 애지중지한다. 그만큼 귀하고 의미 있다.
신성식 교장은 “이게 다 손으로 전한 인사”라며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가고 뿌듯하다고 미소 지었다.
그의 서재에는 귀한 파일이 꽂혀 있다. 1967년 삼육학교에 처음 발을 디딜 때부터 은퇴하기까지 그의 손을 거쳐 간 주요 기관의 관련 자료가 그것이다. 특히 1960년대 후반 사슴의동산 구입을 위해 전국적으로 동전 모으기운동을 전개했던 당시의 포스터에는 오랫동안 눈길이 머문다. 전병덕 원로목사의 자서전에도 나오는 내용이다. 지금과는 사뭇 다른 서울위생병원의 조감도도 이채롭다. 그야말로 한국 재림교회의 역사다. 몇 권의 카탈로그를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미술관’이 아니라 ‘박물관’이 된 것 같은 느낌이다.
신 교장은 “요즘처럼 컴퓨터도 없던 시절이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일일이 손으로 작업해야 했다.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그려야 하는 고된 노동이었다. 정규 수업은 수업대로 하면서 동시에 일하느라 힘들었다. 그래도 하나님의 사업에 작으나마 기여할 수 있었기에 감사하고 보람 차다”며 잠시 옛 기억을 되돌아봤다.
그의 공간은 곧 신앙으로 귀결된다. 언뜻 봐도 가장 크고 오래된 작품 앞으로 발길이 닿는다.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기 전, 그렸던 대형 추상화다. 그에게 있어서는 삶의 분기점이 된 그림이다.
“매일 새벽 3~4시까지 ‘인생이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가’ ‘인간의 존재란 무엇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했죠. 그러다 진리를 찾고 추상화와는 ‘절교’하다시피 했어요. 하나님이 창조하신 천연계를 내가 감히 인위적으로 해체하고 표현한다는 게 자칫 오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예술 신조를 확 바꿨죠”
공모전에서 추상화로 여러 차례 입상할 정도로 인정받는 화가였던 그로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으리라. 그러나 이후로 그의 화폭에 담긴 주제는 늘 자연과 인간이었다. 천연계를 은은하고 깊이 있게 그려내기 위해 애썼다.
40여 년간의 교직생활을 마치고 1999년 정년퇴임한 그는 은퇴 후에도 서울삼육고에서 학부모와 주민들을 대상으로 오랫동안 사군자반을 지도하며 자원봉사하기도 했다.
“삼육학교 교사로 평생을 헌신하며 살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삼육(三育)교육은 최고의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삼육교육을 받은 학생과 제자들이 이처럼 가치 있는 인생을 살길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어느새 2022년의 달력도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한창 연하장을 쓸 시기이건만, 시대가 바뀌고 기술이 발전하며 이제 그마저도 찾아보기 힘든 세상이 됐다. 온라인 메신저의 이모티콘으로 인사를 전하는 게 훨씬 간편하고 빠른 요즘이다. 하지만 눈앞으로 다가온 계묘년(癸卯年) 새해아침에 그는 또 어떤 작품으로 신년인사를 전할지 원로의 붓끝이 자못 궁금해졌다.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인 문방사우가 창가로 스민 볕을 받아 유난히 반짝였다.
#신성식 #연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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