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청지기 간증문 최우수상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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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 김범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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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2.07.18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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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호용 장로 ‘더 큰 헌신은 더 큰 축복이 되어’
그렇게 10여 년의 세월을 보내던 어느 날, 교회의 볼품없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벽에는 빗물이 흘러 지워지지 않은 자국이 선명했고, 이로 인해 천장의 여기저기에 얼룩이 졌다. 비가 오면 빗물이 새고, 콘크리트 바닥에는 먼지가 풀풀 일어나 마치 창고 같은 열악한 환경이었다. 게다가 교회로 올라서는 가파른 길은 어르신들을 더욱 힘겹게 했다.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그래서 1987년 교회를 새로 짓기로 하고, 건축위원장을 맡아 이를 추진하게 됐다. 당시 나의 경제적 형편이 넉넉해 건축을 시작하기로 결심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루 말할 수 없는 가난한 삶을 살고 있던 때다. 월세 단칸방에서 하루하루 근근이 살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왜 하필 내게 교회의 그런 누추한 모습을 보게 하셨을까? 더 잘 살고 넉넉한 성도들도 있었는데 말이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힘겹게 적금을 넣던 중이었다. 곧 만기가 되어 찾게 될 현금 2500만 원이 있었다. 우리는 그 돈 전부를 교회건축 헌금으로 드리기로 했다. 꿈처럼 그리던 내 집 마련이 현실에서 멀어지는 듯 보이자 아내는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런 아내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저리다.
성도들의 헌신과 희생으로 교회건축은 잘 마무리 되어가는 듯 했다. 하지만 여러 사정이 겹치며 재정이 부족하게 됐다. 2차 헌금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건축위원장이었던 나는 믿음으로 500만 원을 추가 작정했다. 헌금 액수를 적기는 쉬웠으나, 그 돈을 마련할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했다. ‘저 큰돈을 어떻게 마련하나’ 인간적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염려가 나를 하나님께 의지하도록 했다.
고요한 밤중 아무도 없는 곳에서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했다. ‘하나님 아버지! 이 돈을 준비하지 못하면 저는 부도 장로가 되고, 건축위원장에서도 물러나야 합니다. 속히 이 일이 이뤄지도록 길을 열어 주옵소서’하고 매일 새벽마다 무릎을 끓었다.
그러던 중 하루는 조직폭력배에 몸담고 있던 한 사람이 나를 찾아왔다. 부산의 한 대형 유락시설의 조경공사를 같이하자는 제안이었다. 관할 구청을 통해 사업을 맡게 된 것이었다. 그의 생각은 부산의 조경 공사업자 50여 명 가운데 제일 순하게 보이는 나를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려 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공사 선금이나 중도금 모두를 빼돌리려 ‘장난’을 하는 사실이 알려지게 됐다.
나는 조용히 그를 찾아가 이야기했다. “이 공사로 얻게 될 수익금은 전부 우리 교회 건축헌금을 위해 드릴 것입니다. 그러니 절대 다른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엄중한 경고와 함께 간절히 부탁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셔서 공사를 무사히 마무리 짓고, 남은 이익금 500만 원이 나의 수중에 딱 들어왔다. 기적 중의 기적이었다.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수도 없이 외치며 남은 교회 건축을 마무리했다. 아름답고 깨끗한 새 성전을 헌당하던 날의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사실 당시 우리 가정은 전셋집을 얻을 돈이 없어 초등학교 교장으로 은퇴하신 분께 사정을 이야기하고, 그의 농장에 있는 작은 농막에서 살아야 했던 때였다. 제일 큰 문제는 두 딸이 화장실 가는 것과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는 일이었다. 고3 수험생이었던 큰딸과 중3인 작은 딸은 재래식 화장실이라 용변을 보면 똥물이 튀어 오르고, 구더기가 바글거리는 곳에서의 생활이 참으로 힘겨웠을 것이다.
게다가 집이 산 밑이라 밤에 귀가할 때면 늘 불안했다. 인신매매가 기승을 부리던 시절이라 두려운 마음을 졸이던 날이 참 많았다. 그런 와중에도 교회건축을 위해 헌금한 아버지와 남편에게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교회 가는 것을 기뻐했던 자녀와 아내에게 너무나 고마웠다. 하나님은 그곳에서의 1년 생활을 지켜보시고 귀한 응답을 주셨다.
우연히 부산 괴정에 있는 한 공사 현장을 둘러보던 중 웬 낯선 사람이 내게 다가와 “여기에는 왜 왔느냐”며 말을 걸어왔다. 그래서 “나는 조경공사를 하는 사람인데 혹시 일거리가 없나 하고 살피러 왔다”고 답했다. 그는 다름 아닌, 공사현장의 소장이었다. 그는 “그래요? 그러면 사무실로 가서 이야기합시다”라며 안내했다.
사무실에서 그는 내게 설계 도면을 내밀며, 대뜸 공사를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아파트 조경은 공사 실적이 없으면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다.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그것도 초면에, 실력도 알지 못하면서 덜컥 공사를 맡긴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분명했다. 나는 최선을 다해 성실히 일했다. 그 일로 1000만 원의 수익을 얻게 됐다. 쌀 200가마니를 살 수 있는 큰돈이었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계속 아파트 공사를 수주했다.
우리 가족은 하나님을 향한 헌신은 재물을 없애버리는 것이 아니라 투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곱하기 법으로 되돌려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이후로 신앙의 밑거름이 됐고, 현재의 동래교회를 짓는 큰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아파트도 마련했고, 사업용 자동차도 구입했다. 교회 봉사를 위해 승합차를 헌신할 수 있을 만큼 넉넉한 삶을 살게 됐다.
하나님의 축복을 이웃과 더 많이 나누기 위해 가난하고 외로운 어르신들을 돕기 시작했다. 승합차에 매 안식일마다 생활필수품, 과자, 빵, 과일, 내의 등을 가득 싣고 어려운 형편에 놓인 주민들의 필요를 따라 나눴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에 그처럼 보람되고 즐거운 시절은 없었다.
철이 바뀔 때마다 관광을 다니고, 목욕봉사를 하며 많은 영혼을 알게 되고, 교회로 인도했다. 입소문이 나며 전국에서 우리 교회를 탐방하기도 했다. 외롭고 힘든 나날을 살던 이들에게 나눈 작은 사랑은 열매를 맺었다. 많은 어르신이 교회의 문턱을 넘었고, 예수님의 사랑을 알게 된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며 침례를 받는 역사가 일어났다.
이렇게 신앙의 참 즐거움과 보람을 맛보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더 놀라운 일을 일으키셨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중견기업의 공장 조경을 맡게 된 것이다. 그 회사는 당시 우리나라에는 하나밖에 없는 직물원료 공장이었다. 독일 기술자를 초빙해 건물을 지을 만큼 내실있었다. 작업을 보고는 주변의 공장들도 요청이 밀려와 큰 수익을 보게 됐다.
그 귀한 수익금을 지역의 가난하고 외로운 이들과 수형자들을 위해 최근까지도 사용했다. 이 일을 통해 나는 하나님께서는 일을 시키시고는 그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새로운 일거리를 주신다는 신앙의 지혜를 배웠다.
나의 이 글은 결코 자랑이 아니다. 믿음의 후손들에게 보내는 간증이다.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의 것을 그저 가져가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가 구별하여 드린 것을 반드시 곱절 이상 되돌려 주시는 분이심을 알리고 싶었다.
희생하고 헌신하는 삶이 지금 당장은 어리석게 보이고, 형편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두려운 상황에 놓이거나 막막한 현실 앞에서 시험에 들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분은 우리의 인도자 되신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나의 아들과 딸들을 그리고 아내와 가족 모두를 크신 사랑 안에서 살게 해 주셨다. 우리는 지금도 넉넉하지는 않지만 부족함 없이 살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고백을 드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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