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건의 내러티브 리포트] ‘호남선교 1번지’ 나주교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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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검은 코트에 눈이 쌓여서 마치 눈사람처럼 보였어요”
110년 전 나주교회의 기초를 닦았던 한효선 전도사의 3대손인 허숙희 집사(영산교회)는 조부모의 기억을 더듬어 가는 중 눈시울이 붉어졌다. 유산으로 신앙을 물려주신 그 고마움, 복음의 빛을 밝히고자 손발이 닳도록 고생한 애틋함이 한꺼번에 몰려온 듯했다.
한약방을 운영하던 한효선 씨는 소화제와 감기약 같은 상비약을 환으로 만들어 선교에 활용했다. 할머니 고인성 집사는 머리가 하얗게 되도록 눈이 내리는 날에도 그 상비약을 들고 이웃에게 복음을 전했다. 어머니인 한종순 집사는 뛰어난 재봉틀 기술의 소유자였다. 그 기술을 십분 발휘해 동네 아이들에게 옷을 만들어 입히고는 했다.
하지만 허 집사는 어머니의 선행을 단 한 번도 그의 입을 통해 들은 적이 없다. 늘 다른 사람들의 전언을 통해 알게 됐다. “너는 불쌍한 사람을 도울 때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너의 착한 행실이 남의 눈에 띄지 않게 하라”는 마태복음 6장 3절의 말씀을 삶에서 실천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러면 은밀히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아 주실 것”이라는 약속을 부여잡고 재산을 늘리거나 출세하는 데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만약 할아버지께서 부자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엄청난 거부가 됐을 거예요. 나주는 예로부터 호남의 중심지였어요. 그런 곳에서 한약방을 운영하셨으니 돈을 벌자면 어마어마하게 벌었겠죠. 하지만 할아버지는 돈을 벌면 복음사업에 모두 투자하셨어요. 오죽하면 어머니께서 ‘난 너희들에게 재산은 물려줄 것이 없고 대신 믿음을 물려줄 것’이라고 말씀하셨겠어요?”
이렇게 말하는 허 집사의 표정에서 아쉬움이나 후회는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오히려 뿌듯함이 묻어났다. 자녀들은 물론 손주까지 모두 믿음 안에 살고 있는 것을 자랑했다. 나주교회의 기초를 세운 한효선 씨의 후손은 현재 50명이 넘으며 5대째 신앙을 전수하고 있다. 비록 모든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이 녹록지 않지만, 언젠가 하늘에서 한데 모이리라는 기대를 품고 있다.
허 집사가 할아버지로부터 전해들은 나주교회의 초창기 이야기는 그 시대상만큼이나 놀라운 일화들로 가득했다. 일제강점기, 삼엄한 감시 속에서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때로는 생명에 위협을 받는 일도 왕왕 있었다. 성도들이 모여 은혜로운 말씀을 나누던 어느 안식일, 갑자기 일경이 들이닥쳐 예배를 방해하는 것이었다.
서슬 퍼런 순사들의 제지에 오히려 한효선 씨는 호통을 쳤다. “여기가 어디라고 행패를 부리느냐”고 말이다. 한효선 씨의 당당함에 순사들의 기세도 누그러졌다. 결국 예배를 제지하지 못하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일경의 만행은 이후로 조금 더 교묘해졌다. 직접 나서지 않고 깡패들을 동원하기 시작했다. 예배시간만 되면 깡패들이 몰려와 훼방을 놓고는 했다. 욕설을 하고 소리를 지르는 통에 예배를 드리기 힘들 정도였다. 동포를 모질게 대할 수 없어 한효선 씨가 좋은 말로 타일러봤지만 좀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더 이상 어쩔 수 없을 것만 같던 이웃사람이 하나둘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깡패들이 위협하고 겁을 줘도 아랑곳하지 않고 교회와 성도들을 감쌌다. 모두 한효선 씨와 나주교회에 은혜를 입었던 이들이었다. 일제의 사주로 행패를 부리기 위해 찾아온 불량배들의 가슴에도 일말의 양심이 남아있었던 것일까. 결국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돌아갔다. 그 이후에도 다른 깡패들이 찾아왔지만,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한 번도 예배를 중단시키지 못했다.
일제강점기 나주교회는 지역의 순사들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교회가 됐다. 허 집사의 증언에 따르면 한효선 씨의 성격이 본래부터 대쪽 같았던 모양이다. 그는 일제의 수많은 위협에도 창씨 개명을 하지 않았으며, 주변 사람들에게도 신사참배를 하지 않도록 강권했다. 이러한 일화를 접하고 나니 한효선 씨가 돈이든 출세든 마음만 먹었으면 이뤄냈을 것이란 허 집사의 증언이 과장으로 들리지 않았다.
이처럼 피땀 흘려 믿음을 지켜온 선배들의 발자취를 직접 손으로 만져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모른다. 구교회의 어느 벽돌에는 당시 성도들의 땀방울이 스며들어 있을 것이다. 아니 벽돌 하나하나에 어마어마한 이야기가 담겨 있을 것이다. 그런 벽돌이 모이고 쌓여 세워진 옛 나주교회는 믿음의 사적지이며 문화재다. 이 교회의 건물이 지금도 남아있음에 감사하는 이유다.
이야기를 전하는 허 집사의 눈이 아련했다. 아마도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이 밀려왔나 보다. 허 집사는 현재 나주교회가 아닌 영산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1990년 1000만 원을 헌신해 교회를 개척했다. 목숨도 아끼지 않고 나주교회를 세운 할아버지와 손발 닳도록 나주교회를 가꿔온 어머니를 한평생 보고 자라온 그였다. 교회 개척은 그렇게 물려받은 신앙의 실천이었을 것이며, 허 집사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는 길이지 않았을까.
허 집사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남편 박용귀 장로(영산교회)가 서로의 꿈을 이야기했다. 부부는 조만간 과수원을 모두 처분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리고 우주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 방방곡곡에 뿌리고 다니고자 하는 것이다. 박 장로가 문서전도의 꿈을 이야기하자 허 집사가 그의 손을 꼭 잡았다. 한효선 씨도 처음에는 문서전도인이었다는 기록이 기자의 머리를 스쳐지났다. 110년 전 한효선 씨가 걸었던 길을 3대손인 허 집사와 남편인 박 장로 다시금 걸어가겠다는 다짐에 기자의 가슴에 쿵하고 바윗덩이가 떨어졌다.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누고 싶었지만, 화요일 저녁이었기에 서둘러 나주교회로 돌아가야만 했다. 박석봉 목사가 운전하는 승합차가 덜컹이며 과수원 사잇길로 빠져나왔다. 영산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했다. 그리고 허 집사의 마지막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우리 절대 쭉정이가 되지 맙시다. 마음 굳게 먹고 예수님 기다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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