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120주년 기념] 권태건의 내러티브 리포트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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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예술을 다룬다고 해서 특별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은 아니었다. 여느 시청의 모습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기자는 서귀포시청 문화예술과를 찾았다.
사무실을 한 번 둘러보기도 전에 한 주무관이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다가왔다. 출입문과 가장 가까운 자리 그리고 앳된 얼굴로 미뤄볼 때, 아마 누가 오더라도 제일 먼저 인사를 하는 직원일 듯 싶었다.
“어떻게 오셨어요?”
“문화재나 유적지 지정과 관련해서 알아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담당자를 만날 수 있을까요?”
그는 아직 일이 익숙지 않은지 옆자리의 선배에게 다가가 조언을 구했다. 속삭이듯 작은 소리로 이야기했기에 대화의 내용을 자세히 알 수는 없었다. 그래서일까. 괜히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잠시 후 주무관은 현재 담당자가 자리를 비웠는데, 곧 돌아올 것이라며 연락처를 남겨 달라고 했다. 그리고 바로 도움을 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며 허리를 숙여 사과했다. 마치 조직의 큰 잘못을 대표해 사죄하는 것처럼.
명함을 건네고, 근처에 있겠다고 했다. 그리고 사무실 문을 열고 나와 복도 끝에 있는 음료자판기로 향했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자판기 옆에는 으레 앉을 곳이 마련돼 있기 때문이었다. 따뜻한 차 한 잔을 뽑아 들고, <한국 재림교회 선교 100년사> 중 ‘제주 성산포 피난생활’ 부분을 펼쳤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복사본을 서류철에서 꺼냈다. 서울위생병원 제주도분원에서 진료받은 환자의 수가 장날에는 1000명에 이르렀다는 내용을 읽으며, 아침에 지나쳐 온 텅 빈 고성 5일장의 모습이 떠올랐다. 기자 역시 강원도 산골이 고향이기에 5일장은 익숙한 풍경이다.
하지만 고향인 삼척시 도계 5일장은 읍사무소와 우체국이 있는 길에서 펼쳐지기에 평소에도 그 길을 지나는 사람이 적잖은 편이다. 하지만 고성 5일장은 넓은 땅에 지붕까지 올려 장터를 만들었기에 비어있다는 느낌이 훨씬 진하게 다가왔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질 즈음 휴대폰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서울에서 여기까지 오셨네요? 저희가 무슨 도움이라도 좀 드릴 수 있어야 할 텐데요…”
과장 직함의 담당 주무관은 기자의 명함을 받아들고 한동안 뚫어지게 쳐다봤다. 지역 신문사도 아니고, 서울에서 여기까지 내려올 정도면 뭔가 골치 아픈 질문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성산포 피난교회에 관한 설명을 들은 그는 이제 나에게 질문했다.
“지어진 지 적어도 50년 이상 된 것은 확실하지요? 그렇다면 이것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부 기관이나 그에 준하는 기관에서 발행한 문서를 찾으셔야 할 겁니다. 그리고 증명한다 해도 여러 관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관련 법령에는 말입니다…”
이미 예상은 했던 터였다. 쉬운 일이었다면 지금처럼 고민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는 두꺼운 자료집에서 눈을 들더니 아련하게 기자를 바라봤다. 아마도 쉬운 길은 아닐 것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하지만 본래 하나님의 길은 좁고 험한 것이라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속 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에 수첩을 덮고 일어나는 기자를 향해 주무관이 말했다.
“저기 그런데…”
이른바 ‘문고리 대화’였다. 상담자가 상담을 마무리하고 방을 나가기 위해 문고리를 잡는 시점에 내담자가 이야기를 추가로 꺼내 놓는 경우가 있다. 이때 이뤄지는 대화를 흔히 문고리 대화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때 가장 중요한 내용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역할이 바뀌었다. 내담자는 분명히 나였다. 아쉬운 사람도 나라는 의미다. 그런데 오히려 상담자가 문고리 대화를 하려는 것이다. 머릿속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듯했다.
“저희(시청 문화예술과)가 문화재 지정과 관련된 업무도 맡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기자님이 말씀하신 일들이 진행되려면 여기가 아니라 제주도 세계유산본부에 가셔야 합니다. 사실상 그쪽이 실무를 총괄하거든요”
‘사실상 실무를 총괄한다’는 말이 퍼뜩 이해가 되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머릿속에 불어오던 시원한 바람이 장마철 공기처럼 눅눅해진 느낌이었다. 세계유산본부는 유엔(UN) 산하 기관이다. 담당 주무관의 설명에 따르면 이곳은 자연유산뿐 아니라 문화유산을 보호하는 일도 담당하기 때문에 성산포 피난교회의 유적지화 가능성을 타진해보기에 적격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자세하고 친절한 설명에도 여전히 찜찜한 기분이 가시지 않았다. ‘혹시라도 업무를 다른 기관에 떠넘기려는 시도라면 어떡하지?’ 하는 의구심이 불현듯 스쳤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처음에 명함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그의 모습이 마음에 걸렸다.
이미 그때 선을 그어버린 건 아닐까. 청사에서 나와 언덕길을 따라 내려갔다. 시청에서의 일이 마치면 마승용 목사(성산포교회)와 신서귀포교회(담임목사 김기대)에서 만나기로 했다. 걸어서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마 목사 역시 김 목사와의 업무를 마치고 기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환한 미소와 함께 내게 물었다.
“시청에서는 뭐라고 하던가요?”
서귀포 앞바다의 윤슬은 유난히 반짝이고, 하늘은 더없이 푸르렀다.
“네. 그게 말이죠...”
* 이 기사는 삼육대학교와 삼육서울병원의 지원으로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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