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리뷰] 죽음의 계곡 넘어 본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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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은 그저 눈으로 읽을 뿐이지만, 어떤 책은 우리 곁으로 다가와 체험이 된다. <죽음의 계곡 24시>(전용근·윤명덕 저)는 후자에 해당한다. 구구절절 설명하기보다 생사의 기로를 생생하게 묘사한다. 저자의 번뜩이는 필체는 어느새 책을 읽고 있는 우리의 서재를 코요테 계곡으로 바꿔 놓는다. 저 커튼 너머로 한 마리의 코요테가 눈을 번뜩이고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죽음의 계곡 24시>가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단연 저자 부부가 겪은 생사의 경험 때문이다. 마치 존 크라카우어(Jon Krakauer)나 유메마쿠라 바쿠(米山峰夫)의 산악 소설을 읽는 것 같은 박진감마저 느껴진다. 때로 숨이 막히고, 땀을 쥐게 만든다. 특히 밤새 저자를 따라 다니며 노려보는 코요테에 대한 부분은 호시탐탐 침범하는 죽음에 대한 비유와 같은 역할로 자연스럽게 책장을 넘기게 만든다. 일종의 복선처럼 작용하며 이후의 이야기에 흥미를 불어넣는다.
엄청난 경험이 모두 훌륭한 책으로 승화되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필체와 구성이 동반돼야 한다. 이 책의 각 장은 평범하게 시작하는 법이 없다. 예컨대 제6장 ‘생사의 기로에 들어서서’의 경우 저자의 다리를 물어뜯는 수백만 마리의 불개미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제8장 ‘날으는 천사’는 “‘두두두두, 두두두두’ 소리가 산등성이 넘어서 들려온다”며 의성어로 첫 문장을 장식해 궁금증을 자아낸다. 이처럼 저자는 시간 순서에 의한 스토리와 인과 관계에 의한 플롯 구성을 적절히 사용하며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구성해 긴장감이 늦춰질 사이를 주지 않는다.
또한 제8장에서 제9장으로 넘어가며 시점이 남편인 전용근 장로에서 아내인 윤명덕 집사로 전환되는데, ‘날으는 천사’(구조 헬리콥터)에 이해 구조되는 남편과 여전히 알 수 없는 아내의 생사를 대비시킴으로 마치 영화의 이중 클라이맥스와 같은 세련된 구성을 경험할 수 있다.
손에 땀을 쥐는 이야기와 인간 근원에 대한 사색
단순히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만으로 이 책이 채워졌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어쩌면 이 책의 백미는 생명에 위협을 가하는 사건과 사건 사이에서 펼쳐지는 저자의 사색과 묵상일지도 모른다. 마치 우리의 인생을 함축해 놓은 것처럼 진하고 육중하게 엄습해 오는 사건을 견뎌내고 차갑고 딱딱한 바위에 기대어 돌아보는 삶의 궤적은 물리적인 시간과 공간의 계곡을 넘어 우리에게 큰 울림을 전해준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의 계곡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 사건을 겪은 인간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이 책이 단순히 사건에 관한 책이라면 전용근 장로와 윤명덕 집사가 구조되면서 마무리 됐을 것이다. 하지만 구조된 이후에도 이야기는 한참이나 이어진다. 그렇기에 죽음의 계곡에서 벗어난 이야기는 단순히 삶에서 겪을 수 있는 놀라운 경험을 넘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시 23:4)에서 우리를 구해내신 하나님의 구속의 이야기로 완결성을 갖게 된다.
아울러 모든 스토리를 마친 후 책의 말미에 지휘자 헤르베르트 블롬슈테트(Herbert Blomstedt)의 간증과 같은 이야기가 ‘왜 나는 크리스천인가?’란 제목으로 이어진다. 마치 에필로그 같은 부분이다. 여기서 블롬슈테트는 제목 그대로 자신이 크리스천인 이유를 설명한다.
그는 우리의 출발지, 즉 원천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갈망을 드러내고, 그것이 다름 아닌 하나님이 계신 곳이라 말하며 책의 마침표를 찍는다. 그리고 블롬슈테트의 고백은 제1장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 미국으로 향한 저자 부부의 행보와 맞물리며, 결국 이 거대한 이야기의 근원에 우리의 본향이 자리하고 있었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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