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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별 지다’ 신정균 원로목사 숙환으로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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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태 기자 [email protected] 입력 2009.06.05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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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행정력으로 한국 재림교회 발전 기초 다져
한국 재림교회 현대사의 증인인 신정균 원로목사가 향년 92세를 일기로 주 안에서 잠들었다. 사진기자 김범태
일제 강압시대부터 재림기별 전파를 위해 불철주야 애쓴 한국 재림교회 현대사의 증인인 신정균 원로목사가 지난 3일, 향년 92세를 일기로 주 안에서 잠들었다.

신 목사는 일제 강점기와 해방, 6.25동란, 산업화와 근대화 등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헌신적인 목회자이자 탁월한 행정가로 한국 재림교회 발전의 기초를 닦았다. 특히 최연소 대회장과 최장수 대회장을 역임하는 등 뚜렷한 족적을 남기며, 성도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아왔다.

고인은 1917년 부산시 동구 수정동에서 아버지 신병희 씨와 어머니 박상림 씨 슬하에서 태어나 삼육신학원의 전신인 사역자양성소를 졸업하고, 1939년 신학원 동기인 이봉자 사모와 결혼했다.

졸업과 동시에 북한대회에서 전도사로 사역을 시작한 고인은 1952년까지 남선대회에서 일선 목회자로 사역했다. 그 사이 문서전도자로 2년간 봉사하기도 했다.

1953년에는 최연소 영남대회장에 부름 받았으며, 이후 16년간 호남대회장, 중한대회장, 중서대회장, 경남대회장, 중한대회장 등을 역임하며 지역 선교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1969년 한국연합회 재단 상무로 자리를 옮긴 이후 은퇴하던 1975년까지 교단의 살림살이를 책임 맡아 교단 발전을 위한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특히 재단 상무로 재직 시 현재의 서울중앙교회 부지가 한 종교단체와의 계약마찰로 재판에 계류되고, 설상가상 계약서가 6.25 사변으로 분실되어 재산을 거의 빼앗길 처지에 놓인 것을 기적적으로 계약서를 찾아내어 재판에 승소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 사건이 있은 후 괴한이 휘두른 둔기로 머리를 맞아 한 때 사경을 헤매기도 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고비를 넘기고 1975년 은퇴하기 까지 헌신적으로 직임에 매진했다. 고인은 은퇴 후에도 추부교회, 구례리교회, 평화의동산 등을 섬기며 복음전파의 밀알이 되었다.  

News_4238_file2_v.png한편, 유가족과 은퇴목사들의 모임인 성우회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5일 오전 삼육의료원 추모관에서 열린 발인예배에서 한국연합회장 홍명관 목사는 “우리는 주 안에서 죽은 자를 향한 하나님의 확실한 약속을 갖고 있기에 세상의 슬픔과는 다른 위로와 용기를 얻는다”며 “고인은 재림의 그날 그리스도의 호령 속에 무덤을 박차고 일어나 영광스런 부활을 경험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심태섭 원로목사는 조사에서 고인과의 추억을 회고하며 “그는 언제나 만나면 찬미를 부르고, 말씀을 읽고, 기도로 용기를 북돋는 신앙의 거목이었다”면서 “어렵고 외롭고 힘든 길을 그렇게 초연하게 걸어가셨으니 우리 후배들도 그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겠다”고 추모했다.    

고 신정균 목사의 유가족으로는 미망인 이봉자 사모와 2남2녀의 자녀 등 자손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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