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달러면 새 집을 지어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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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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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08.14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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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놈펜 쁘레악리업의 ‘주거수리 및 개선사업’ 현장에서
여기저기 부유물이 둥둥 떠다니는 더러운 하천을 따라 30여 채의 가옥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이곳은 캄보디아에서도 가장 가난한 도시빈민들이 모여 사는 무허가주택 밀집지역. 한눈에 언뜻 보아도 성한 집이 한 곳도 없을 정도다.
아드라코리아 신원식 목사와 미국 가든그로브교회의 김용 장로, 샌디에이고교회 강영길 집사 등이 현지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는 신성은 양과 진한나 양의 안내로 지난달 이곳을 찾았다.
자원봉사자들이 현재 이 마을에서 추진하고 있는 ‘주거수리 및 개선사업’ 현장을 조사하기 위해 직접 방문한 것이다. 봉사자들은 이곳 빈곤아동들의 불안전한 주거환경을 개선해 자연재해와 예기치 못한 인재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동네어귀에서 낯선 이방인의 모습을 발견한 일단의 아이들이 신기한 듯 일행을 마중삼아 구경나왔다. 하지만 노후가옥들의 지붕보다 먼저 일행의 눈길을 끈 것은 신발을 신지 않고 골목을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가난한 가정형편은 이 아이들에게 신발 한 켤레도 허락하지 않을 만큼 숨 막히다.
금방 십 수 명으로 불어난 아이들 중 신발과 옷가지를 제대로 갖춰 챙긴 아이는 별로 없다. 아이들의 발엔 저마다 크고 작은 상처자국이 선명하다. 마실 물조차 없는 이들에게 씻을 물은 사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작은 상처도 쉽게 곪고 깊은 흉터를 남긴다. 봉사자들이 측은한 마음으로 상처부위를 짚어보지만, 아이들은 일상의 익숙함처럼 까르르 천진한 웃음소리만 남긴 채 뒤돌아선다.
발걸음을 옮겨 이들의 가옥을 둘러보았다. 길게 줄 선 집들은 바나나잎이나 팜나무 잎사귀를 엮어 만들었다. 양철이나 플라스틱 혹은 함석을 올린 집은 그나마 형편이 나은 집이다.
가옥은 1층과 2층으로 나뉜 구조를 갖추었다. 언제 비가 내려 휩쓸고 갈지 알 수 없는 캄보디아에서는 이렇게 계단을 만들어 2층에서 주로 생활한다. 집 바로 밑으로 악취가 진동하는 하천이 그대로 흐른다.
오르내리기가 아찔할 만큼 가파르게 세워 놓은 사다리를 계단 삼아 들어선 집은 언제 무너질지 모를 만큼 위태롭다. 거실이나 방은 물론, 주방과 화장실의 구분조차 없다. 찌그러진 냄비, 벌레가 오가는 비위생적인 도마와 접시 그리고 그릇 몇 개가 가재도구의 전부다.
나무로 대충 이어붙인 바닥은 구멍이 숭숭 뚫려 밑이 훤하게 들여다보이고, 천정이나 벽도 잎사귀가 부식되어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면 꼼짝없이 빗물에 젖기 일쑤다. 그저 급한 대로 옷가지나 가재도구의 위치를 바꿔주는 것이 최선의 ‘방어’다.
이런 환경의 집에 많게는 10명, 적게는 5명 내외의 식구가 살고 있다. 심한 경우 전혀 세대가 다른 3가정이 한 집에 모여 사는 경우도 있다고. 이 마을 30여 가구 중 가장 가난한 10여 가구의 가정이 재림교인이다.
이번에는 쁘레악리업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장소를 옮겨보았다. 자동차로 약 10분 거리에 위치한 마을이다.
흔들흔들 위태롭게 세워놓은 외나무다리를 곡예 하듯 지나야 아이의 집으로 갈 수 있다. 30여 미터의 다리를 따라 가다보니 온 몸이 후들거린다. 그 밑으론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을 만큼 고약한 악취가 뿜어져 나오는 하천이 지난다.
먼 곳에서 손님이 오셨다고 한 소녀가 자기 키의 두 배는 되어 보임직한 발판을 들고 나온다. 하지만 발판을 밟고도 집까지 다가갈 엄두가 선뜻 나지 않는다.
설혹 다리를 건너가더라도 결국 아이의 집은 무릎까지 차오르는 하천을 건너야 다다를 수 있는 구조다. 다리가 집 앞에서 끊겼기 때문이다.
아이의 집도 팜나무 잎사귀로 얼기설기 엮은 무허가주택이다. 이 허름한 가옥이 아이와 가족들의 보금자리다. 물 위에 지은 집이 금방이라도 부러지거나 겨우 무게를 지탱하고 있는 기둥이 곧 무너져 내릴 것처럼 위태롭게 보인다.
아이는 “밤에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들이치는 비바람을 피해 이리저리 잠자리를 뒤척이거나, 벽에 기댄 채 삐걱거리는 대나무 바닥에 앉아 곤한 잠을 청해야 한다”고 말한다. 비가 많이 오는 날엔 배수가 되지 않은 빗물이 하천과 만나 목까지 차오를 때도 있다고 한다.
이들의 또 하나의 걱정은 식수다. 정화시설이 없는 이곳에서 물은 사먹어야 하지만 돈이 없다. 몇 해 전 봉사자들이 와서 우물을 파 주었지만, 후속관리가 되지 않아 지금은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무허가주택이다 보니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도 없다. 이들은 이렇듯 정부와 사회의 무관심 속에 열악한 환경에 그대로 노출되어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위험하고 낡은 이들의 집을 고치는데 드는 비용은 미화 30달러. 팜나무잎이나 바나나잎을 엮어 지붕과 벽을 만들어 세우면 적어도 2년은 족히 버텨낼 수 있다.
모쪼록 우기가 끝나기 전까지 ‘주거수리 및 개선사업’이 마무리되면 좋겠다는 게 이곳 주민과 자원봉사자들의 한결같은 마음이다.
마을을 나서는 길.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근사한 패밀리레스토랑에서의 식사 한 끼 값이면, 사랑스런 내 아이의 장난감 하나 값이면, 혹은 세련된 옷 한 벌 가격도 되지 않는 돈이면 이들 가족이 편안하고, 훨씬 안락한 공간에서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집을 지을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착잡해진다.
무거운 발걸음을 뒤로 하고 마을을 떠난다. 아까 동네초입에서 만났던 꼬마아이 대여섯이 동구 밖까지 배웅을 나와 “안녕” “굿바이”하고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넨다.
아이들은 오늘도 구멍 뚫린 그 집에서 밤하늘의 별을 보며 잠자리에 들 것이다. 제발 오늘밤엔 비바람이 들이치지 않길 바라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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