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옥 양의 다카에서 온 편지(마지막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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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옥 통신원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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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0.11.22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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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벼락에 엮어진 살아있는 그림 ... ‘가족’
지난달 17일, 그림 전시회에서 친구들에게 자신의 그림을 자랑스럽게 설명하고 있던 로틴(11세)을 만났다.
로틴은 방글라데시의 수도, 다카 밀풀 2지역에 살고 있다. 다카 서북부 외곽에 위치한 밀풀은 운송업(릭샤), 서비스업, 그리고 의류공단이 발달된 지역으로 많은 도시 이주민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로틴의 집은 월 700TK(원화 11,500원)의 임대료를 지불하는 슬럼지역에 있다. 방 한 칸으로 구분 된 서른다섯 가구가 벽돌 한 장, 혹은 나무판자 한 장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줄지어져 있다. 두 칸의 공동 화장실, 한 칸의 공동 샤워실, 공동 주방, 공동 빨래터. 모든 시설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그야말로 슬럼지역이다.
그래서일까? ‘가족’이란 주제로 그림을 그리던 날, 로틴은 가족 구성원을 그리는 대신, 가족과 함께 살고 싶은 집을 그렸다.
나는 그림을 설명하는 아이의 해맑은 웃음 속에서 작은 꿈을 보았다. 나무가 있고, 강이 흐르고, 벼를 심을 논과 여섯 가족이 함께 살 작은 집. 로틴의 행복한 가족을 상상해 보았다.
‘가족’이란 주제로 열린 그림 그리기대회에는 100명의 어린이들이 참가했다. 아이들이 표현한 가족은 각양각색이었다. 가족 구성원의 모습을 한 명 한 명 그린 친구가 있는가 하면, 엄마나 아빠, 혹은 가족 구성원 중 한 사람만 그린 친구도 있었고, 로틴처럼 집을 그린 친구도 있었다.
그 중 특별한 한 아이가 기억난다. 검은 크레파스로 날카로운 선을 가득 채운 아이였다. 가족을 표현하라는 선생님의 설명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듯한 아이는 다른 아이들의 그림을 유심히 살피더니 이내, 검은색으로 하얀 종이를 가득 채웠습니다. 행여나 이 시간이 아이의 마음을 힘들게 한 것은 아닐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그림 전시회는 슬럼지역을 들어가는 입구 통로에 전시 되었다. 이곳을 전시 장소로 정한 목적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먼저, 슬럼지역 어린이들을 터부시 하는 지역 어른들에게 그림을 통해 어린이들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일부 지역 어른들은 아무 이유 없이 슬럼지역 어린이들을 거리에서 쫓아내기도 하고, 꿀밤을 주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슬럼지역 어린이의 부모가 자녀에 대한 뿌듯함을 가지길 바랐다. 가난하지만 자녀의 마음속에 자랑스러운 가족이 있다는 사실이 가난에 지친 부모에게 용기를 주기 바랐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림이 전시된 담을 소리 없이 허물고 싶었다. 슬럼지역을 알려주는 이끼 가득한 담벼락, 가진 사람과 가지지 못한 사람을 구분해 놓은 담벼락은 우리 어린이들의 ‘가족’ 그림을 전시하기에 더없이 적합한 장소였다.
전시회가 있던 날, 많은 어른들이 흥미로운 모습으로 그림을 지켜보았다. 자녀의 손에 이끌려 전시회를 찾은 엄마, 아빠의 환한 미소는 그 어떤 날보다 자랑스러웠고,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는 더 맑았다.
소리 없는 그림이 높은 담벼락을 넘어 온 동네로 따스함을 전달했다. 이 따뜻함이 계속 전달된다면 언제가 방글라데시 슬럼지역에도 우리 모두가 바라는 변화가 오지 않을까?
이제 아드라 방글라데시 봉사활동을 마치게 된다. 가슴 뛰게 만들고, 때론 울컥하게 함으로 다시한번 주먹지게 했던, 내게 끝 모를 도전의 원동력이 되어준 슬럼지역 어린이들에게 이제 작별인사를 전해야 할 시간이다. 그들에게 감사와 고마움의 인사를 전한다.
그동안 ‘이희옥 양의 다카에서 온 편지’를 사랑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이희옥 양의 귀국에 따라 ‘다카에서 온 편지’는 이번 주를 끝으로 막을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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