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취재] ③라오스에 ‘사랑묘목’을 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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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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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2.08.05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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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나눔의사회, SMA 쿤 해외무료진료 현장에서
오전 8시. 드디어 무료진료 첫 날 아침의 커튼이 열렸다. 본격적인 진료에 앞서 쿤군 군수와 도 보건국 대표 등 관리들이 참석한 가운데 사랑나눔의사회 무료진료단을 환영하는 행사가 열렸다.
이들은 한국에서 전문의료인이 사랑의 의술을 펼치기 위해 라오스까지 와 준 것에 감동하며 각별한 고마움을 표했다.
쿤 군립병원 운동장은 이른 아침부터 많은 사람의 발걸음으로 북적였다. 군청에서 일찌감치 안내방송을 하고, 광고가 잘 된 덕에 예상보다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었다.
게 중 먼 거리에 사는 사람들은 전날 출발해 친척집에서 자고 새벽같이 이곳을 찾은 이도 있었다. 라오족뿐 아니라, 고산지대에 사는 몽족인도 상당수 눈에 띄었다.
며칠 전 나무에서 놀다 떨어져 팔이 부러진 아이, 이유도 모른 채 갑자기 고열이 올라 칭얼대는 손자를 업고 온 할머니, 잔뜩 찌푸린 날씨에도 선글라스를 끼고 멋을 한껏 낸 중년의 신사와 두 손을 꼭 잡고 나온 금슬 좋은 노부부 등 모두 반갑고 즐거운 표정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동네 아주머니의 얼굴에선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여기저기에서 모여든 환자들로 준비해 놓은 의자는 시작도 하기 전에 꽉 들어찼다.
오전 9시 시작된 오전진료는 갑자기 몰려든 사람들로 일대 혼란이 빚어졌다. 접수창구는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붐볐다. 진행요원이 무질서한 군중을 정리하느라 한동안 진땀을 빼야했다.
올해는 특히 해외의료봉사 활동 처음으로 전자의무기록(EMR: Electronic Medical Record) 시스템을 시도했다. 그러나 현지 사정으로 오전 11시경 부득이하게 종료해야 했다. 불안정한 통신망 탓에 컴퓨터에 자꾸 버그가 생겼기 때문이다.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이른 종료에 한국에서부터 며칠을 고생해 시스템을 구축한 남동우 대원의 얼굴에 진한 아쉬움이 묻어났다.
소아과 병동 ... 엄마 등에 업혀 온 실명아동 ‘안타까움만...’
소아과는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풍선아트로 장식됐다. 삭막했던 병실이 누구나 좋아할 만한 공간으로 바뀌었다. 노란색, 녹색, 분홍색 등 형형색색의 풍선은 강아지, 나비, 꽃 등 아기자기하고 앙증맞은 캐릭터로 변해 환자를 맞이했다. 아이들의 천진함과 잘 어울려 편안해 보였다.
오전 11시. 한 아이가 엄마의 등에 업혀 헐레벌떡 소아과 병동으로 뛰어 들어왔다. 얼마 전 칼로 왼쪽 눈을 찔렸는데, 초기치료에 실패해 눈동자에 종양이 생긴 것이다. 카콤이라는 이름을 가진 올해 네 살의 이 소년은 계속 엄마의 치마가랑이를 붙잡고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부풀어 오른 종양에 아이는 눈도 제대로 뜨고 감을 수 없었다. 언뜻 봐도 당장 수술이 필요해 보였다.
순간, 소아과 담당 강하라 선생의 낯빛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여기서는 단순히 안약만 처방할 수 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한시라도 빨리 큰 병원으로 가 전문수술을 받아야하는 긴급한 상황이었다.
강 선생은 “이미 한 쪽 눈은 실명이 된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하며 “만약 종양이 계속 부풀어 오른다면 평생 저렇게 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앞으로 종양이 더 커지거나 안구 내부로 파고들면 더 악화될 수 있다”고 걱정했다. 게다가 감염이 번져 바이러스가 뇌로 침입한다면 치명적 위험에 처할 수도 있었다.
수술을 권유했지만, 아이 엄마는 “돈이 없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이에게는 급한 대로 눈의 붓기가 계속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한 안약이 처방됐다. 이것이 근본적 치료가 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현재로서는 최선의 선택이라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웠다. 강하라 선생의 눈가에 더 이상 어떤 조치도 취해줄 수 없다는 아쉬움과 미안함이 교차해 지났다.
산부인과 병동 ... 갑자기 복도서 쓰러진 산모에 ‘화들짝’
같은 시각, 갑자기 산부인과 병동이 부산해졌다. 친정아버지의 진료를 도우러왔던 한 임산부가 복도에서 쓰러진 것이다. 응급상황에 각 실에 있던 의료진이 모두 급박하게 모여들었다. 재빨리 혈압을 재고, 동공을 확인했다.
라오어가 가능한 박병원 선생이 환자와 대화를 시도하며 의식을 체크했다. 다행히 의식은 깨어있는 상태였다. 의료진은 환자를 다급하게 병실로 옮겨 치료를 시작했다. 검진 결과 큰 이상은 없었다. 임신빈혈 증상이었다. 수액을 투여하고 안정을 취하도록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환자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산부인과 조현정 선생은 “혹시 태아에게 영향이 있을지 모르니 초음파를 찍어보자”며 환자의 손을 붙잡았다. 하지만 그녀는 “별일 아니다. 부끄럽게 이러지 말라”며 그의 손길을 뿌리쳤다.
주룩주룩 내리는 빗속을 아버지와 함께 걸으며 집으로 향하는 그녀의 모습이 걱정스러운 듯, 조현정 선생은 자신의 눈가에서 이들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진료소 현관을 한동안 떠나지 못했다.
진료 후에도 현지 NGO 관계자 초청 특강열기로 ‘후끈’
전쟁터 같던 첫날 진료는 오후 6시가 가까워져서야 마무리됐다. 각 병실을 정리하고 청소한 후 스테이션별로 모여 그날의 활동 피드백을 시작했다. 좋았던 점, 부족했던 점, 평가와 개선사항 등 하루 활동에 대한 반성과 의견을 교환했다. 더 효율적인 진료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저녁식사와 함께 현지에서 모자보건사업을 펼치는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 백주왕 과장의 특강이 마련됐다. 백 과장은 라오스에서 진행 중인 모자보건사업의 현황과 특징, 향후 전망과 계획, 한국과의 연계사업 등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오후 내내 진료현장에 머물며 이들의 활동을 지켜본 백 과장은 “그동안 많은 봉사단을 만나봤지만, 의료봉사대는 처음”이라며 “라오스 국민들이 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일에 여러분이 큰 힘이 되어 달라”고 부탁했다.
하루 종일 정신없이 분주하게 활동하며 움직인 탓에 피곤할 법도 한데, 대원들의 눈빛은 더욱 반짝였다. 마치 자신들에게 주어진 사명이 무엇인지 되새기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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