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취재] ⑤라오스에 ‘사랑묘목’을 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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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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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2.08.06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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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나눔의사회, SMA 쿤 해외무료진료 현장에서
이날 아침은 아기의 울음소리로 시작됐다. 밤새 진통하던 산모가 새벽 4시경 3.5Kg의 건강한 사내아이를 순산했다. 산모와 아이아빠는 물론, 곁에서 출산을 지킨 할머니는 첫 아이의 출생을 무척 기뻐했다. 봉사대원들도 병실을 직접 찾아와 새 생명의 탄생을 축하했다.
발길을 치과 진료실로 옮겼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벽에 걸린 스탈린과 레닌의 사진액자가 눈에 띄었다. 이곳이 사회주의 국가임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쿤 병원에는 치과의사가 한 명뿐이다. 진료의자는 비엔티안에 있는 병원에서 쓰던 것을 지원받은 것이다. 도립병원에도 치과의자가 한 대뿐인 것을 생각하면, 그나마 시설이 좋은 편이다. 그러나 병원을 찾는 환자의 질병종류와 열악한 도로사정을 감안하면 이곳 주민들에게 치과진료는 어쩌다 만나게 되는 봉사팀을 기다리는 편이 훨씬 수월하다.
탁자와 책상을 붙여 만든 5개의 진료의자엔 환자가 빼곡히 들어 차있었다. 주로 스케일링이나 발치 환자들이다. 평소 치아관리가 잘되지 않은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단 음식을 좋아하는 식습관도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
어둡고 환기가 잘 되지 않는 열악한 환경에 습기까지 높아 연신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대원들은 2인1조가 되어 손발을 맞췄다. 찰떡호흡이다. 한쪽에서는 기구를 소독하는 손길이 바쁘게 오갔다.
조용하던 진료실에 갑자기 ‘전쟁’이 벌어졌다. 치과 기구를 처음 본 한 아이가 지레 겁을 집어먹고는 치료에 협조를 하지 않아서다. 발버둥치는 아이는 좀처럼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금은철 선생이 급하게 배운 서툰 라오어로 아이를 어르고 달랬지만, 녀석은 발을 동동 구르며 저항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뒷짐을 지고 조용히 지켜보던 아이의 아빠가 의사선생님 보기 미안했던지 녀석의 엉덩이를 찰싹 때리며 냅다 호통을 쳤다. 그제야 아이는 입을 벌렸다. 하지만 아이의 눈빛에는 여전히 두려움이 가시지 않았다. 그 ‘공포’가 어떤 건지 잘 알기에 아이의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했다.
친구 따라 호기심에 진료소에 온 동네꼬마는 치과진료소의 모습에 겁이 덜컥 났다. 처음 보는 신기한 의료장비와 집게, 핀셋 등이 무시무시한 포스를 드러내며 반짝이고 있었다. ‘치~치~’ 거리며 하얀 연기를 내뿜는 이름 모를 장비도 무섭기는 매한가지였다. 이럴 땐 빨리 발길을 돌려 집으로 줄행랑치는 것이 살 길 같아 보였다.
‘아뿔싸!’
먼저 진료소에 들어간 친구가 울음을 터트리며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이 문 밖으로 스쳤다. 모른 채 하고 도망가려니 영 신경이 쓰이는 눈치다. 창가에 턱을 괴고 걱정스런 모습으로 지켜보던 아이의 마음에 ‘괜히 왔다’는 생각이 드는 듯 했다. 그러나 이미 자신의 이름이 불리고 난 후였다.
간단한 검사 후 아이는 썩은 이를 뽑았다. 하필 정중앙 앞니다. 예쁜 의사누나에게 용감한 사나이로 보이려 ‘라이벌’인 친구 녀석보다 소리도 지르지 않고, 아우성도 부리지 않았다. 하지만 눈물은 찔끔 났다. 의사누나가 “잘 참았다”면서 등을 토닥여줬다. 이쯤이면 판정승이다.
하지만 비주얼이 순식간에 엉망이 됐다. 거울에 비쳐보니 앞니가 빠진 자신의 모습이 영 볼품없었다. 이리저리 둘러봐도 어색하고 맘에 들지 않는 표정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만약 뽑지 않았으면 옆의 이까지 함께 썩을 뻔 했다는 의사누나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료소를 나서는 아이의 손에 의사누나는 빠진 이를 ‘기념품’으로 쥐어주었다. 아이는 친구 손을 붙잡고 천진하게 웃으며 비 내리는 거리를 냅다 가로질러 지났다. 서로의 모습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까르르 넘어가는 아이의 웃음소리가 길 건너까지 청명하게 들려왔다. 그제야 치과 의사누나의 입가에도 빙그레 웃음꽃이 피었다.
나통마을 이동진료 ... 의료기술 전수세미나 ‘바쁜 하루’
이날 오전에는 병원에서 약 30분가량 떨어져 있는 나통마을로 방문진료를 떠났다. 라오족이 사는 산간마을이다. 강하라 선생과 김영선 간호사, 전주향 약사 등이 동행했다. 빗물을 잔뜩 먹은 비포장도로를 덜컹거리며 한참 달리다보니 주민들의 모습이 보였다.
진료는 이 마을의 보건소에서 진행됐다. 전날 몽족마을보다 훨씬 환경이 좋았다. 약국이 분리되어 있고, 진료실도 훨씬 쾌적했다. 주민들의 모습도 꽤 단정해 보였다. 이 마을에서는 이날 하루 80여명의 환자가 치료를 받았다. 이들 역시 대부분 소화기 질환이나 피부염을 앓고 있었다.
전주향 약사는 틈틈이 아이들을 위해 올바른 손 씻기 법을 알려주었다. 처음 접하는 내용이라 그런지 아이들의 표정이 신기하기도 하고, 쑥스러운 듯 보이기도 했다. 발 디딜 틈 없이 몰려드는 환자들을 진료하느라 대원들의 유니폼은 금세 땀으로 뒤범벅됐다. 하지만 이들은 잔잔한 눈웃음으로 환자를 맞이했다. 주민들의 얼굴에도 환한 미소가 번진 것은 물론이다.
오후에는 혈액종양 내과 전문의인 최대로 선생이 폰사완시에 위치한 씨엥쾅 도립병원을 찾아 의료기술 전수세미나를 진행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혈액과 세포, 빈혈, 혈액검사 방법 등에 대해 강의했다. 사랑나눔의사회 봉사팀은 이번 기간 동안 심장초음파, 복부초음파, 산부인과초음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세미나를 열었다.
도 보건국의 협력을 얻어 진행된 이 세미나는 이번 활동에서 무척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지역주민의 건강증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고, 현지 의료진과 펼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형태의 협력사업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강의를 듣기 위해 도립병원 직원뿐 아니라, 씨엥쾅에서 자동차로 5시간 거리에 떨어진 목마이에서도 의사와 의료진이 참석하는 등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최 선생의 강의는 당초 약속된 시간을 한참 지나도록 계속됐다.
한밤중 대원들이 모두 골방에 모인 까닭은?
이날 밤. 대원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사연은 이랬다. 이날 오전 께오깐마을 이동진료 현장에 한 사내아이가 부모와 함께 찾아왔다. 올해 네 살 된 이 아이는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목에 혹이 생겼다. 작년에 수술을 했지만, 종양이 완전하게 제거되지 않았는지, 혹은 계속 자랐고 이제는 수술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종양이 악성인지 여부는 CT촬영을 해 봐야 정확하게 알 수 있겠지만, 혹이 호흡기를 계속 누르고 있어 숨을 제대로 쉴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가래가 제때 배출되지 않다보니 폐렴증상까지 겹쳐 하루빨리 장기적인 입원치료가 필요했다.
쿤 병원에서는 수술이 불가능했다. 때문에 베엔티안이나 폰사완의 대형병원에서 검사를 받은 후, 전문의로부터 치료를 받아야했다. 그러나 아이의 부모는 돈이 없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이를 이대로 두었다간 생명이 위급한 절박한 상황이었지만, 부모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였다. 아이의 딱한 사정을 전해들은 대원들은 자신이 도울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했고, 자발적으로 수술비용을 모으기로 했다. 어느 누구의 요청도 없었지만, 꺼져가는 생명의 불씨를 지피기 위해 헌신하기로 한 것이다.
그 자리에서 500달러의 자금이 모아졌다. 이 정도면 급한 대로 수술과 입원치료 비용은 될 것 같았다. 이튿날, 아이는 부모와 함께 폰사완의 도립병원으로 떠났다. 대원들의 의료봉사가 무료진료뿐 아니라, 실제로 한 생명을 살리는 손이 된 순간이었다. 이처럼 이번 활동은 아프고 슬퍼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마음 한 자락을 나눠주는 따뜻한 현장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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