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신문

본문 바로가기
더보기
뉴스 검색
통합검색

뉴스

[전문] 최경천 교수 주제발표문

페이지 정보

정리 - 김범태 기자 [email protected] 입력 2017.05.29 06:06
글씨크기

본문

선교적 교회론의 신학적 주제들과 한국 재림교회의 선교적 과제
삼육대 신학과 최경천 교수는 ‘선교적 교회론의 신학적 주제들과 한국 재림교회의 선교적 과제’라는 제목의 연구논문을 발표했다.
1. 들어가며
오늘 재림교회가 ‘선교적 교회론’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현실적 필요 때문이다. 교회가 선교적 동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평가와 함께 지역교회가 자기 교회를 돌보기에도 여력이 없는 상황에 처해 있고, 오랜 선교정체 현상과 함께 교회가 노령화되고 마침내 쇠퇴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는 긴박한 현실 인식에서 교회가 이 절박한 상황들을 어떻게 타개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교회의 역동성 상실을 단순히 라오디게아 교회가 보여주는 종말론적, 예언적 모습으로 치부하고 남의 집 불구경하듯 바라볼 수 없는 이유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엡 4:12; 5:23; 골 1:24)이며, 그리스도의 신부(교후 11:1)이기 때문이다. 또한 재림교회는 이 땅에 세워진 하나님의 왕국과 그리스도께서 다시 세우실 하나님의 왕국을 선도할 시대적 사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재림교회의 선교적 동기를 새롭게 하고 교회를 쇄신할 실마리를 ‘선교적 교회론’에서 찾을 수 있을까? 필자는 선교적 교회론을 둘러싸고 있는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다”라고 확신한다.

선교적 교회론과 연관된 가장 예민한 주제는 “교회론”으로 교회가 선교를 가지고 있느냐, 아니면 교회가 곧 선교이냐, 아니면 선교가 교회보다 더 우선되느냐 등의 문제를 둘러싼 에큐메니컬 진영의 주장과 복음주의 진영의 주장은 여전히 긴장상태에 있다. 왜냐하면, 에큐메니컬 진영의 선교적 교회론의 주장들 속에는 교단중심의 선교를 초월하여 초교파적인 선교협력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협성대 이후천 교수는 선교적 교회를 교회중심적 복음주의와 세상중심적 에큐메니컬 진영을 통전시킬 수 있는 접촉점으로 파악한다.

선교적 교회론이 강조하는 신학적 이슈들은 재림교회가 150년을 달려오는 동안 균형을 놓쳐버린 몇 가지 중요한 신학적 주제들을 기억나게 해 준다. 그리고 교회가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을 구분하는 지혜를 가지고 교회의 본질을 되살려내는 신학적 탐구를 하도록 재촉한다. 어거스틴(AD 354-430)은 “본질에서 연합, 비본질에서 자유, 모든 것에서 사랑”이라는 말을 남겼다.

비록 선교적 교회론이 주로 에큐메니컬 진영에서 발전된 것이긴 하나 복음주의적 측면에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신학적 가치들이 재조명되고 있다. 특별히 선교적 교회론이 주장하는 교회의 선교적 정체성에 대한 강조와, 교회의 방향을 세상을 향해 안으로부터 밖으로 돌리고, 사람들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교회’가 아니라 ‘가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지적은 일면 세상으로부터 고립되기를 자처해온 교회를 향해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선교적 교회론이 제시하는 신학적 논의들은 선교에 대한 신선한 접근을 제공하고 있으며, 이상적인 교회의 모습을 더욱 뚜렷하게 그려내고 있다. 본 논고에서는 지면이 허락하는 한 선교적 교회론이 주장하는 핵심적 이슈들을 제시하고, 이 담론이 강조하는 신학적 주제들을 통해 재림교회가 새로운 시각과 방식으로 선교를 실천하기 위해 필요한 몇 가지 과제들을 제안하도록 하겠다.

2. 선교적 교회론의 핵심적 주제들
‘선교적 교회’라는 용어가 세계 선교신학계에서 처음 사용된 것은 데릴 구더(Darrell L. Guder)가 편집한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가 출판된 1998년이다. 이 용어가 출현하게 된 배경에는 1980년대 영국에서 복음과 현대문화 사이를 연관시키기 위해 레슬리 뉴비긴(Lesslie Newbigin)이 시작한 GOC(the Gospel and Our Culture)운동을 이어받은 북미의 교회지도자들과 신학자들이 1980년대 후반에 구성한 ‘복음과 우리 문화 네트워크’ (GOCN, the Gospel and Our Culture Network)가 있다.

한국 교회에 선교적 교회를 최초로 소개한 것은 2003년 말 서울신대 최형근 박사의 “한국교회를 위한 선교적 교회론”이다. 이후 그는 두 차례에 걸쳐 선교적 교회론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다.

한국 재림교회 선교학자로서 제일 먼저 이 주제를 다룬 것은 김성익 교수이며, <김성익, “미국교회 선교적 교회론의 신학적 기초와 적용양태,” 선교신학, Vol. 38 (2015), 43-73> 이후 교단 내에서 선교적 교회론과 연관된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다. 선교적 교회론은 하나의 이론이기보다는 신학적 재조명이기 때문에 몇 가지 신학적 주제들을 통해 선교적 교회론을 파악하고, 연관된 선교적 과제들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A. 교회와 선교의 관계
선교적 교회론의 핵심 주제 중 가장 기본적인 것이 교회와 선교사이의 관계다. 선교적 교회는 선교론과 교회론을 통합하려는 시도에서 출현한 것이다. 교회의 선교적 본질에 대한 강조는 하나의 명제처럼 인식되어 왔다. 에밀 부르너(Emil Brunner)의 유명한 진술처럼 “불이 불탐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교회는 선교함으로 존재한다.” 교회는 선교를 위해 존재한다. 엘렌 화잇(Ellen G. White)은 <사도행적>에서 “교회는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세우신 기관이다. 교회는 봉사를 위하여 조직되었으므로, 그 사명은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교회는 선교를 위해 모이고 선교를 위해 흩어져야 한다. 교회와 선교는 분리될 수 없다. 그런데, 사람들을 교회 안으로 모아들이던 전통적인 교회의 개념이 후기 기독교 사회로 접어든 서구에서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면서 선교적 교회가 출현한 것이다.

선교적 교회는 교회가 내부지향적이 된 것을 비평한다. 교회가 ‘가는 구조’(go-structures) 대신 ‘오는 구조’(come-structures)의 모습을 보이며 사람들이 찾아오기를 기대하는 ‘기다리는 교회’의 모습으로 고착되어 가는 것을 문제로 본 것이다.

선교적 교회는 밀라노 칙령(313년) 이후 20세기 말까지 기독교를 특징짓는 크리스텐덤(Christendom) 패러다임이 가지고 있었던 한계를 극복하는 대안으로서 ‘나가는 교회’ 개념을 강조한다. 이 개념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라는 신학적 재발견에 기초한다. ‘하나님의 선교’는 선교의 주체가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며, 아버지 하나님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아들을 파송하고, 아버지와 아들은 다시 성령을 파송하여 직접 선교하신다는 신학적 발견이다.

이러한 관점은 교회가 주도하는 선교로부터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교회로의 인식의 변화를 이끌어낸다. 이 지점에서 교회는 하나님의 심장소리와 발자국 소리를 듣는 것이다. 죄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분주히 다니시는 하나님을 발견할 때 교회의 명령 때문이 아니라 지금도 일하시는 하나님의 선교 때문에 선교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후천 교수는 지난 100년간의 미국과 한국교회에서 나타난 교회와 선교 사이의 관계를 등식부호로 정리하였다. 선교회 중심의 교회선교 1.0(1920년대 이후)은 ‘교회>선교’ 등식, 교회성장론 중심의 교회 2.0(미국 1950년대 이후 그리고 한국 70-80년대 이후)은 ‘교회≧선교’ 등식, 교회건강론이 대두된 교회 3.0(미국 1975년 이후 그리고 한국 1990년대 이후)은 ‘교회≦선교’ 등식, 선교적 교회론으로 요약되는 교회 4.0(미국 1998년 이후 그리고 한국 2003년 이후)은 ‘교회<선교’ 등식으로 구분하였다.

선교회 중심의 교회 1.0의 선교방법이 부흥회와 전도프로그램이었다면, 교회성장론 중심의 교회 2.0은 각종 전도프로그램과 교회성장 프로그램 개발, 그리고 카리스마 리더십에 기초한 선교였다. 이에 비해 교회건강론에 기초한 교회 3.0은 제자훈련의 시스템화, 건강한 교회성장 원리 개발 등에 의존하였고, 선교적 교회론 중심의 교회 4.0은 지역사회에서의 교회 역할을 강조하며,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의 통전적 이론과 실천을 통해 선교한다. 교회 1.0에서 3.0까지는 목회자 중심의 교단 교세에 의한 선교였다면, 교회 4.0은 평신도 역할이 강화된다.

이후천 교수는 선교적 교회론이 한국 교회 선교의 위기적 상황에서 교회성장론과 건강한 교회론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제시되었다고 파악한다. 일반적으로 교회성장론의 문제는 마케팅 원리와 소비자 중심적 사고를 통해 교회를 성장시키는 동안 신자들의 수평적 이동을 통한 지역적 불균형을 일으키고, 번영신학으로 인한 교회의 세속화 심화를 꼽는다, 건강한 교회론의 문제는 끌어 모으기식 선교에 의한 개체 교회 성장의 양극화가 심화된 것으로 본다. 교회가 가야 하는데 가지 않는 것은 교회론 중심의 선교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한편, 선교적 교회의 선교의 출발은 교회론이 아닌 기독론에서 시작한다. 기독론(Christology)이 선교학(missiology)을 결정짓고, 선교학이 교회론(ecclesiology)을 결정짓는다.

성육신을 통해 세상에 오신 아들 예수님으로부터 선교의 당위성과 동기를 발견하지 못하면 교회자체를 성장시키고자 하는 크리스텐덤의 매커니즘에 교회가 희생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크리스텐덤은 교회론이 먼저 오고, 그 다음에 구원자이신 메시아를 전하는 기독론과 선교가 위치한다. 이렇게 되면 교회는 ‘가는 구조’가 아니라 ‘오는 구조’에 천착되는 것이다.

결국, 끌어모으기식(attractional/extractional) 마케팅 전략에 의존하고, 교회 안과 바깥 세상을 이원화하여 안전한 교회와 위험한 세상으로 나누고, 목사의 리더십에 의존된 위로부터 행사되는 계층적 리더십에 의존한 교회를 지향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한국 재림교회가 처한 상황이 크리스텐덤 패러다임과 매우 유사한 입장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지역교회 선교는 주로 상명하달식 프로젝트들에 의해 유지되고, 지역교회 리더십은 평신도 대신 목사에게 의존되어 있으며, 선교의 방식 자체가 세상으로 나가서 지역공동체의 필요를 채우는 대신 교회로 끌어오기 위한 의도로 운영되고 있다면 크리스텐덤 패러다임이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B. 교회와 세상과의 관계
두 번째 선교적 교회의 신학적 주제는 교회와 세상과의 관계이다. 크리스텐덤 관점은 교회와 세상을 이원론적으로 접근한다. 교회가 하나님을 향하여 예배하고 기도하는 일을 우선으로 두고, 세상에 대해서는 직업적인 목사나 훈련받은 전문가에 의존한 회심전도에 중점을 둔다. 세상은 위험하고 악하기 때문에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을 끌어내어 구조하는 것이 교회의 임무이다. 세상 속에 들어가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압제와 불공정, 그리고 불의를 해결하는 것은 교회가 할 우선적인 과업이 아니라고 본다. 교회가 일차적으로 중요하고 성도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이차적인 영역이라는 사고가 지배적이다.

교회 안에서 하는 전도나 봉사는 일차적으로 중요하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직업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은 이차적이고 부차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결국 목사의 역할이 강조되고, 평신도의 역할은 축소된다.

이에 반하여 선교적 교회는 세상은 하나님의 창조세계이며 구속사역의 장이라고 인식한다.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모든 죄인이 구원을 받는 특별은총에 속한 복음을 전하는 일이 필수적이지만, 일반은총의 가치 즉 모든 지구인들을 위한 사회봉사나 사회참여, 사회적 소외계층을 돌보는 구제활동 등은 복음의 부차적인 것이 아니라, 통전적인 의미에서 동일한 중요성을 갖는다고 본다.

교회뿐 아니라 세계가 다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 있으며, 교회 바깥 역시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다.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구속을 통해 이 세계는 하나님의 주권으로 회복되었으며, 하나님의 왕국은 이미 시작되었다. 그래서 하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선교는 이 땅에 평안(샬롬)을 주는 일이며, 고통과 신음 가운데 있는 영혼들에게 쉼을 주는 사역이다. 과거 이방인들을 통해 일하셨던 하나님은 오늘날 일반인들을 통해서도 당신의 세계를 이끌어 가신다.

이러한 점에서 안식일의 기별은 현대적인 새로운 의미를 회복한다. 압제당하는 자를 풀어 쉬게 하는 하나님의 공의와 샬롬의 사역이 안식일의 의미 속에서 살아나는 것이다. 비록 교회와 세상은 ‘이미’(already)와 ‘아직’(not yet)의 긴장관계 속에 있지만 하나님은 일반계시인 천연계와 양심을 통해 지금도 세상에서 일하시며 선교하신다. 교회는 이 땅에서 거룩성을 유지하면서도 소명에 따라 세상에서 일하는 이중적 정체성을 반영해야 하는 것이다.

선교적 교회는 교회중심적 선교가 가지고 있었던 교회와 세상의 이원론적 사고를 극복하며, 더욱 적극적으로 세상의 일에 관여하게 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선교적 교회는 교회와 하나님과 세상의 관계를 통합적으로 보는 것이다. 세상에 대한 책무 없이 추상적으로 드려지는 예배나, 적실성 없는 신학이나, 선교적 의식이 없는 영성이 아니라 세상의 문제를 공감하며, 교회 밖으로 뛰어 나가 세상에 문제에 관여하는 교회가 되자는 것이다.

이 같은 선교적 교회의 관점은 재림교회가 이해하고 있는 예수님의 선교방법과도 일맥상통한다. 회당은 예수님의 선교중심지가 아니었다. 그의 선교지는 길가, 나무 아래, 우물가 등이었다. 예수님은 먼저 사람들과 함께 섞이고, 그들의 공감하고 동정하셨으며, 그들의 필요를 채우시고, 신뢰를 얻으신 후에 따라 오라고 말씀하셨다.

바울 역시 회당에서 사람들을 만날 뿐만 아니라 시장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였다(행 17:17). 화잇 여사 당시 도시 선교에 참여했던 데이비드 폴슨(David Paulson)은 교회가 오직 교인이 될 것 같은 사람들에게만 관심을 갖게 되면 결국 사람들로 하여금 “불신과 의혹”을 만들어내고, “더 많은 선교의 문”을 닫게 만든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그는 예수님이 사람들의 “필요”에 집중했지, “결과”에 집중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오직 “인간을 위한 진정한 사랑”(genuin love for humanity)만이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고백했다.

실제로 초기 재림교회는 도시선교를 통해 사람들의 필요를 적극적으로 채우는 사업을 활발히 진행하였다. 1885년부터 1899년까지 년간 도시선교 보고서가 출판되었는데, 1886년 보고서에 의하면 재림교회는 36개의 도시선교회를 가지고 있었고, 여기서 102명의 사역자와 224명의 평신도들이 일하고 있었다. 당시 세계 신자수는 23,111명에 불과했다. 현재와 비교하면 79,000명의 사역자들이 도시선교에 직접 가담한 상황이다.

재림교회의 사명진술서에는 구체적인 선교방법이 제시되어 있는데 ▲그리스도와 같은 삶(Christ-like Living) ▲그리스도와 같은 소통(Christ-like Communication) ▲그리스도와 같은 제자화(Christ-like Discipling) ▲그리스도와 같은 가르침(Christ-like Teaching) ▲그리스도와 같은 치료(Christ-like Healing) ▲그리스도와 같은 봉사(Christ-like Service)이다.

이 가운데에서 치료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전인적 안녕이라는 성경적 원리를 확신하면서 우리는 건강한 삶을 추구하고 병든 자를 치료하고, 우리의 사역을 통해 가난한 자와 압제받는 자를 돕는 일을 우선순위로 삼는다. 이로써 창조주의 동정심 많은 회복의 사역에 협력한다.” 또한 봉사에 대하여 “우리는 예수님의 모본을 따라 겸손한 봉사에 우리 자신들을 헌신하므로 빈곤과 비극과 절망과 질병 등에 고통받는 개인들과 인류들을 위해 봉사한다”라고 천명하고 있다.

재림교회 신학자인 리차드 라이스(Richard Rice)는 그의 책 에서 우리가 가진 교회론의 관점을 “믿고, 행하고, 소속되고”로부터 “소속되고, 행하고, 믿는”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의 책 서문에서 “공동체는 그리스도 존재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믿고, 행하고, 소속되는 것 모두가 그리스도인 삶에 본질적인 것이지만, 소속이 다른 것보다 더욱 중요하고 더욱 근본적이다. 더욱이, 교회는 성령께서 창조하셨기 때문에 어떤 곳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친교를 제공한다”라고 밝힌다.

교리적으로 가르쳐 그리스도인 삶을 살게 되면 비로소 교인으로 인정해 주는 것이 아니라, 먼저 인간적인 관계를 통해 삶의 필요를 채우고, 감동을 통해 삶이 변하게 되면 결국 믿음을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재림교회가 가지고 있는 전인적 인간이해는 선교적 교회가 제시하고 있는 교회와 세계의 통합적 이해와 연결될 수 있다. 보다 적극적으로 세상 일에 관여하고, 사람들의 아픔에 동참하며, 참된 휴머니즘을 실천하는 것은 재림교회의 신학은 물론 그리스도의 정신과 일치한다. 이 점에서 재림교회는 선교적 교회론이 추구하고 있는 적극적인 선교로부터 열기를 받아 올 필요가 있는 것이다.

C. 복음과 문화의 관계
세 번째 선교적 교회의 신학적 주제로 복음과 문화의 관계 또는 교회와 문화와의 관계이다. 이 부분은 재림교회가 선교중심적인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넘어가야 할 다리이다. 미그리스도인이(unchurched) 성숙한 그리스도인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십자가를 통해 복음을 받아들이는 궁극적 회심을 경험해야 하지만, 그 전에 세상과 교회 사이에 놓여져 있는 문화적 간극을 건너야만 한다. 기독교 역시 하나의 문화이기 때문에 미그리스도인들에게 기독교는 하나의 타문화이다.

여기서 제기되는 선교적 질문은 과연 교회가 미그리스도인들이 처한 문화적 상황 안에서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그들을 우리의 문화로 들어도록 초청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그들의 문화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가라는 것이다. 이 질문에는 그리스도의 성육신 교리를 통해 답을 찾아야만 한다.  

선교적 교회의 신학의 기초인 성육신 교리는 신자들이 사람들이 처한 문화적 상황 속으로 들어가도록 초청한다. 성육신 하신 예수님은 당시 사람들이 쓰고 있던 문화적 정황 속으로 들어오셔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고, 타당하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복음을 상황화하셨다. 대표적으로 요한복음에서 사용된 “로고스”는 예수님이 자신을 헬라적 문화 속에서 상황화한 예가 된다.

사람들의 문화 속으로 들어오신 하나님은 인간들의 문화 속에서 말씀하셨고, 마침내 교회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문화로 변혁시키셨다. 결국 선교라는 것은 문화변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복음주의 진영은 텍스트와 콘텍스트 상관관계에 있어서 텍스트에 더 강조점을 두었다. 하지만 선교적 교회론은 지역교회가 지역문화와 지역사회 발전과 관련된 선교활동을 펼칠 수 있다는 확실한 근거를 제시한다.

상황화의 기본적인 작업은 복음과 문화를 따로 떼어 놓고, 복음의 본질적인 부분과 문화의 비본질적인 부분을 구분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문화를 복음과 동일시하는 경우가 많다. 재림교인들은 여러 면에서 문화적인 요소를 복음과 혼동한다.

재림교회가 가진 문화적인 전통들(음식, 음악, 장신구, 소설, 영화 등)을 구원의 조건이나 그리스도인 삶의 필수적인 요소로 제시하게 되면 오직 예수를 통해 구원을 얻는다는 기독교의 복음을 혼동하게 만든다. 재림교회가 가지고 있는 문화가 고차원적이고, 유익하고, 선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재림교회 문화 자체가 복음이 아니다. 더욱이 재림교회가 가지고 있는 문화적 특징이 세속적인 사람들과의 교제나 협력을 방해한다면 재림교회 문화는 선교의 장벽이 되고 만다.

바울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과 토색하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고전 5:10)고 권면한 적이 있다. 재림교회가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문화적 특징들이 세상을 향해 가라는 예수님의 선교명령들을 방해하고 있다면 바울의 지적처럼 이 세상에 살면서 세상 밖으로 나가려고 발버둥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선교적 교회는 교회가 성육신적 접근을 통해 세상의 문화에 적극적으로 상관한다. 성육신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목과 그에 따르는 연합을 위해 하나님이 우리 세계와 삶과 실제의 심충부로 들어오시려고 스스로 취하신 숭고한 사랑과 겸손의 행위를 뜻한다.”

이 성육신의 진리는 첫째, 사람들에게 의미와 역사 감각을 제공하는 고유한 문화적 틀을 해치지 않고 복음이 진짜로 그들의 것이 될 수 있게 하는 선교적 수단을 제공해 준다. 기독교 신앙은 각 지역과 그룹의 문화마다 새롭고 다른 방식으로 인식되고 경험될 수 있다. 둘째, 성육신적 선교는 복음의 진리 자체를 타협하지 않고 가능한 모든 방식으로 사람들과 동일시해야 함을 의미한다.

셋째, 성육신적 선교는 한 그룹의 사람들 가운데서 현실적으로 영속적으로 성육신적 동참을 실천하는 것이다. 외부인으로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내부인으로서 사람들의 삶에 참여하는 것이다. 넷째, 성육신적 선교는 사람들을 데려오기보다 보내는 추진력을 의미하며, 구심적이 아니라 원심적이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다섯 번째, 성육신적 선교는 복음을 성육신적으로 합당한 방식으로 구체화하여, 사람들이 자신의 문화(의미 체계)와 삶 속에서 예수님을 경험하게 하는 일을 의미한다.

이 지점에서 교회는 다양한 문화적 접촉점을 통해 선교할 아이디어를 발견한다. 교회를 안정화시키기 위하여 합병하거나 대형화하는 대신, 사람들이 살고 있는 삶의 영역의 구석 구석으로 들어가 일상생활 속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일을 하게 된다. 포스트모더니즘 세대를 위해서는 그들의 문화에 맞는 교회개척을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롭게 생겨나는 신도시의 당면한 과제들을 함께 풀어나가는 교회개척이 가능할 것이다. 최근 한국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선교적 교회개척 사례로 “더불어 숲 동산교회”가 있다. 경기도 화성시 봉담에서 지역의 필요를 채우며 지역의 교회로 자리를 잡았다. 교회는 공정무역 카페, 도서관, 마을 학교, 사회적 협동조합, 공간공유사업 등을 통해 지역사회에서 공공성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이 교회는 아예 사회선교부가 있어서 최근 “세월호 3주기 기억식”이라든지 “4.16 가족과 함께하는 부활적 연합예배” 등을 진행하였다.

선교적 교회는 이 세계를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영역으로 보면서, 인간에게 주어진 “생육하고 번성하라” (창1:28)는 명령 속에서 발견되는 문화명령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려고 한다. 이 선교적 교회가 강조하는 성육신 신학에서 펼쳐 나오는 문화와 복음 사이의 관계와 상황화의 과제, 그리고 교회개척의 실천적 의지는 한국 재림교회가 근본적으로 선교적인 공동체가 되기 위하여 반드시 탐구하고 적용해야 할 주제이다.

3. 한국 재림교회의 선교적 과제
선교적 교회론은 교회성장을 위한 하나의 방법론이 아니라 초대교회가 제시한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자는 신학적 운동으로 평가된다. 선교적 교회론을 배태시킨 신학의 뿌리는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 삼위일체, 하나님의 왕국 등으로 요약된다. 이 신학적 뿌리에서 선교적 교회론의 특징인 성육신적 교회, 메시아적 교회, 사도적 교회가 등장한다.

성육신적 교회는 앞서 살핀 것처럼 문화적인 콘텍스트와 관련된 특징이며, 메시아적 교회는 교회와 세상 사이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전 세계를 포함한다는 일반계시 또는 일반은총 차원에서 갖는 교회의 지평에 관련된 것이며, 사도적 교회는 크리스텐덤 시대의 끌어모으는 교회의 본질이 아니라, 나가는 교회를 강조하는 것이다.

선교적 교회는 한 마디로 보냄받음을 강조한다. 킴 햄몬드(Kim Hammond)와 대런 크론쇼(Darren Cronshaw)가 제시한 선교적 교회의 6가지 모습인 소비자 중심주의를 넘어, 보냄 받은 사람들, 깊이 뿌리 내리는 목회, 샬롬 영성, 안전한 장소, 공유하는 삶은 한 마디로 “보냄 받음”으로 요약된다. 이 선교적 교회론으로부터 “교회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과 함께 현재 한국 재림교회가 처한 상황을 대처할 구체적인 방법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후천은 선교적 교회론을 통해 현재 교회를 진단하고, 미래 교회의 방향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현재 교회는 (1) 건물 중심의 교회 선교, (2) 건물과 목회자 중심의 고비용 교회 선교, (3) 예배시간 중심의 교회 선교, (4) 교회의 수직적 직제를 통한 갈등유발과 폐쇄적인 교회 선교 의사소통, (5) 선교자원을 독점하고 사유화하는 교회 선교 시스템 등으로 진단하였다.

다시 미래교회의 모습의 특징으로 (1) 공동체 중심의 노마드적 교회 선교, (2) 공동체 중심의 저비용 교회경영 및 선교사역, (3) 상시 가능한 교회 선교사역(디아코니아) 및 정의, 평화, 창조의 보전 실현, (4) 교회 직제의 수평화를 통한 교회 선교 의사소통, (5) 선교자원의 공동체화를 통한 지역에서의 선교자원 고효율적 재배치로 제시하였다.

A. 교회개척 재개  
선교적 교회 담론에서 발견하는 한국 교회에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제안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교회개척이다. 나가는 교회의 구체적인 실천은 교회개척이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볼 때 세상은 타락하여 더 이상 손 댈 수 없는 구제불능의 장소가 아니라 “추수할 곡식”(요 4:35 참고)이 넘쳐나는 장소다. 교회는 그동안 교회의 구심점으로 사람을 끌어모으는 노력을 교회의 원심력인 교회개척과 함께 실천해야 한다.

문화적으로 타당한 다양한 접촉점들을 개발하고, 사회학적이고 인구통계학적 연구를 통해 타겟 그룹의 문화를 해독하고, 또한 그들의 필요를 찾고, 교회개척을 위해 교회의 지도자들과 평신도들을 훈련시키는 과정이 수립되어야 한다. 교회개척을 위한 신학적인 확신, 문화적인 접촉점 개발, 교회내 교회개척자 훈련 등 구체적인 훈련과정들이 요구된다. 교회개척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들을 배우기 위해 소셜벤처나 사회적 기업같은 원리들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B. 리더십 패러다임 전환
교회개척을 위해서는 리더십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수적이다. 교회개척은 단순한 프로젝트나 사업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으로만 가능한 영적인 운동이다. 그렇지 않으면 장애를 만날 때 타개해 나갈 수 없다. 교회개척이 매뉴얼을 만들어 하달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그런 성격이라면 누구라도 성취할 수 있는 일이었을 것이다. 교회개척은 소위 기업가정신이 필요하다. 교회개척을 위해서는 에베소서(4:11)에서 제시하고 있는 5가지 은사 중에 사도성과 선지자성이 요구된다. 다섯 가지 은사를 APEPT(Apostle, Prophet, Evangelist, Pastor, Teacher) 또는 APEST(Apostle, Prophet, Evangelist, Shepherd, Teacher)로 요약한다.

또한 선교적 교회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연합을 기초로 수평적인 리더십을 지향한다. 목사의 주된 역할은 평신도들을 훈련시켜 그들이 교회개척의 리더들이 되도록 세우는 것이다(엡 4:12). 모든 신자들이 성령의 감동에 의해 주도적이고 자발적으로 자신의 삶의 영역 즉 직장이나 학교나 가정에서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어야만 선교가 가능하다. 표면적으로 수직계층적으로 보이는 재림교회 조직은 계급구조가 아닌 것을 기억해야 한다.

재림교회 조직은 선교를 위해 지원하는 조직이며, 지역교회가 선교를 주도할 수 있도록 섬기는 조직이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교회의 단위가 개인이며, 그 다음이 지역교회이고, 행정지도력은 보호와 책임과 기능과 함께 섬기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교회개척을 위한 아이디어 조차도 교단에서 내려주면 안 된다. 그 지역과 문화에 가장 적절한 교회개척의 방법은 그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잘 찾아낼 수 있다.

성령께서 각 개인과 그룹을 통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교단차원의 전략이나 선교정책을 통해 방해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교단에서는 각 지역교회 단위에서 자체적이고, 자발적인 선교의 전략을 개발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마련해서 제공하면 된다. 지금까지 교단중심적인 전략과 선교정책이 제시되었다면, 각 지역이 처한 문화적 정황에 맞는 선교전략을 지역교회 스스로가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이끌어야 한다.

C. 신학교육 방향 재설정
더불어 신학교육의 방향도 새롭게 해야 한다. 단순히 졸업 이후에 맡겨질 교회를 돌보기 위해 준비하는 것이 신학교육이 아니라, 교회개척을 위한 훈련과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커리큘럼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이미 목회자 수급의 불균형 때문에 소수의 졸업생만 일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있는 현실에서 신학교육은 모든 학생들이 목회자가 되든지 않든지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명을 위해 자신을 구체적으로 준비할 수 있도록 비전을 제시해야만 한다.

신학을 공부하는 동안 자신이 목회를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다른 전공들을 선택해서 부전공이나 복수전공을 공부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현실을 교회개척 비전을 통해 새로운 포부로 변화시켜야 한다. 오히려 신학 외에 다른 학문을 한 가지 이상 공부해서라도 교회개척을 위한 구체적인 직업들을 발굴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신학생들은 단순히 목사가 되기 위해 입학한 것이 아니라 교회개척 선교사가 되기 위해 신학공부를 한다는 것으로 사고를 전환시켜야 한다.

선교적 교회론에서 이미 이중직업 교회개척자에 대한 구체적인 예들을 제시하고 있다. 미국문화를 배경에서 교회개척자들이 가질 수 있는 직업으로 엔틱 수리사업, 제빵, 탁아, 수집, 컴퓨터활용, 컴퓨터 수리, 수공, 요리, 주차장 보수, 음식배달, 가구수리, 페인팅, 세금관련사업, 신문출판, 사진, 사진앨범제작, 주차장보수, 음식배달, 가구수리, 페인팅, 세금관련, 신문출판, 사진, 사진앨범제작, 렌탈, 이력서 작성, 연구, 안전, 전화설문, 정원사, 중고차판매, 결혼식매니저, 작가, 개인상담, 노인봉사, 번역일 등이 제시되고 있다.

실제로 소수의 사람들로 구성된 작업 개척교회를 섬기기 위해서는 교회가 주는 봉급에 의존해서는 실현불가능하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복음을 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신학교육에서 이중직업 교회개척자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과 교육과정들을 수립할 수 있을 것이다.

4. 나가며
한국 재림교회의 역동성은 반드시 회복되어야 한다. 우리가 가진 고유한 기별이 있고, 사명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만히 앉아서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신학적 탐구를 통해 우리의 열정을 일으킬 진리들이 새롭게 조명되어야 하고,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적 시도들이 있어야 한다. 선교적 교회는 교회가 세상 속에서 문화적으로 적절하게, 일상생활 속에서, 사람들의 실제적 필요를 채우는 살아있는 유기체가 되자고 초청한다. 여기에는 복음과 문화, 교회와 세상, 교회와 선교 사이의 신학적 긴장과 균형이 요구된다. 동시에 우리가 서 있는 안전지대로부터 빠져 나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세상을 향해 가는 실천적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갈 5:6).
좋아요 0

사이트 정보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한국연합회
  • 고유번호증번호: 204-82-62040
  • 대표자: 강순기
  • 운영자: 이상용
  • 운영센터 : 02-3299-5294
  • 재림미디어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서울, 아54732
  • 등록(발행)일자 : 2023년 3월 8일
  • 발행인 : 엄덕현
  • 편집인 : 이상용
  • 주소 : 서울 동대문구 이문로 1길 11, 시조사 2층
Copyrightⓒ adventist.or.kr All right reserved.
Contact [email protected] for more information.